사제지간

여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은 때가 있었다. 후회한다. 늦었지만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학교 선생은 많이 참아야 한다. 나이 차이가 얼마가 나든 그들은 이성이므로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언행을 삼가고 눈길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최근 문단을 할퀴고 지나간 성추행 파문을 보면 무척 아프고 걱정스럽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분명 작가에게 잘못이 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교육적 접근이다. 질투 때문에 제자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제지간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야 한다. 지금 작가는 소설보다 더 아픈, 죽지 못해 사는 천형에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 닥친 총체적 난국은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도를 넘은,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경계를 넘은 일부 욕심 많은 자 때문이다. 그나마 다수의 건전한 소시민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덕에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국제반은 2+2 복수학위 운영을 위한 특별반이다. 중국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와서 2년을 더 공부하면 양국에서 두 개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다. 13명의 학생 중 남학생은 달랑 1명인데 그 학생이 우리 반에서 가장 여성스럽다. 금요일마다 마트에서 김치를 사와서 학생식당에서 함께 먹는다. 스승을 위한 작은 배려지만 점심시간에 둘러앉아 김치 통을 열 때마다 시큼한 냄새에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따뜻해진다.

선생은 그저 공부만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은 오류다. 교실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잘 가르치고 잘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사제 간의 관계가 바로서야 한다. 관계가 바로서기 전에 입을 벌려 억지로 지식을 먹이려 들면 탈이 나고 제자는 스승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특히 중국에서는 '관계'가 중요하다. 그래서 점심은 항상 학생식당에서 함께 먹는다. 교(敎)보다 육(育)에 더 힘을 쏟아 가슴으로 제자들을 키운 선생이 더 오래 남는다. 한국에서는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육(育)도 스승의 몫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건강해지고 선생이 바로 서야 교실이 건강해진다. 가정과 학교는 사회를 구성하는 줄기세포와 같아서 가정과 교실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아프다. 쓰러져 가는 아버지를 곧추세우고 구석으로 내몰린 선생님에게 다시 교실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한국은 지금 작은 관계들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군거화일(群居和一),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荀子)의 말과 같이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는 각자 제자리에서 정해진 관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김경식(시인·중국 하북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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