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남긴 '둘만의 추억', 전북 부안으로 떠난 가을 여행

결혼 17년 세월을 곰삭힌 우리 부부는 설움도 다디달게 익어가는 젓갈처럼 살아왔다. 바쁜 오전 직장일 때문에 연차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점심 무렵부터 반차를 사용한 아내와 최근 짭조름한 젓갈 냄새 물씬 풍기는 전북 부안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둘만의 1박 이상의 여행은 처음이다. 초중고에 다니는 아이 셋을 키우며 '가족'이라는 형태로 전국 각지를 즐겨 나들이 다녔지만 정작 우리 부부만의 온전한 나들이는 없었다.

경남 진주에서 전북 부안으로 떠나는 길은 멀었다.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해 광주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로 갈아타고도 한참을 더 갔다. 우리는 먼저 부안청자박물관을 둘러보고 기념품 몇 개를 산 뒤 줄포만갯벌생태공원(부안자연생태공원)으로 옮겼다. 오후 5시 20분. 해가 뉘엿뉘엿 저 너머로 지려고 하고 드넓은 갯벌은 인적 없었다. 손 맞잡고 갯벌을 걸었다. 연분홍빛 개미취들이 이 짠 내 가득한 갯벌 사이사이 우리의 동행이 되었다. 가을 노을을 배경으로 부부는 서로를 찍었다. 해가 지는 게 아쉬운지 하늘은 새파랗게 질렸다. 구름은 온통 넘어가는 해 주위에 몰려들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새들이 하나둘 날아간다. 서둘러 근처 곰소항으로 향했다.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에서 젓갈 백반을 시켜 먹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갓 잡아 올린 어물을 곰소 천일염에 버무려 1년 이상 숙성시킨 젓갈들이라 비릿한 맛이 없다. 여행의 절반은 맛이라 했던가, 갯벌의 찬바람에 추웠다는 아내는 곰삭은 젓갈에 위로받는 듯 맛나게 먹는다. 조금 전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오자 밤은 깊어 숙소로 잡은 모항으로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모항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바람이 찼지만 꼭 잡은 아내 손은 따뜻했다.

가을 노을과 함께 우리 부부의 1박 2일의 시간도 흘러갔다. 이 계절 익숙하기 전에 다시 채비를 하기로 했다. 아내는 푸른 하늘과 청량한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고 했다. 붉게 타는 나뭇잎이 빚은 가을 강을 만나러 떠날 참이다. 우리 부부는 여행 길목에서 마주한 소소한 추억 조각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 가을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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