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92) 경기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새삼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주권혁명>(2008)에서 저자 손석춘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할 권리만이 아니라 감시하고 탄핵할 권리까지 국민이 확보해야 옳다. 국민 의사에 반하는 행정부나 입법부, 사법부 결정을 국민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민중 또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열정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시인해야 옳다. 민중의 다수가 역사적 현실에 침묵하거나 외면할 때 역사는 반드시 보복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를 우리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났고 그 질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이 질서에 오기까지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 실상을 알리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던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지켜냈던가.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내 전시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이천IC로 빠지면 언덕배기에 새로운 건물과 조형물이 눈에 띈다. "민주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우리를 맞이하는 경기도 이천의 민주화운동기념공원(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산 28-4)을 찾았다. 지난 2000년 민주화 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그 이듬해 민주공원 조성사업을 결정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법률 제정으로부터는 16년, 공원조성 결정부터는 15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마침내 지난 6월 개관했다. 196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주요한 역사와 열사에 대해 기록한 전시관과 정부가 인정한 민주화 관련 사람들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민주화운동 역사.

"떨쳐 일어납시다. 슬픔과 분노를 그 자체로 끝낼 것이 아니라 현 정치권력에 맞서 정면투쟁, 정면돌파해 나갑시다."(천세용의 유서), "부모님께 효도 못해서 미안하다. 무노동 무임금 철폐하라. 가난 셋방살이가 싫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조탄압 중지하라. 노동자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열사 소리 듣고 싶어 분신한 게 아니다. 난 노동자 의식만 있을 뿐이다."(김종수의 마지막 육성)

유서, 메모, 편지, 일기 등 열사들의 고뇌와 시대에 대한 분노, 의지 등이 담긴 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부모님께 글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미안함, 암울하기만 한 조국의 현실과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을 보며 번민의 시간을 보내다 극단의 선택에 이르렀던 결연함에 숙연해진다. "민주주의 만세!"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깃발광장 벽에 걸린 '민주는 사람이다'.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야외로 나왔다. '깃발광장'에는 열사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문구들이 깃발에 적혀 펄럭인다. '피로 물들지라도 우리 함께 간다면 꽃길이 아니겠는가'라는 의미를 담은 듯한 '고난의 길'을 통과하면 민주광장과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 닿는다. 1991년 4월 26일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986년 전방입소 반대 농성을 벌이다 분신 산화한 김세진 열사 등 수많은 민주 영령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민주광장에는 김인태·서동억 작가의 '염원의 빛' 조형물이 반짝거린다.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땅에 자유 평등 정의 평화가 구현되고 민주의 큰 세상이 영원토록 이어지길 염원하며 민주화 운동 희생자 영령께 삼가 이 탑을 바칩니다."

강경대 열사 등 민주 영령의 묘역.
민주광장 '염원의 빛' 조형물.
유서·메모·편지·일기 등 열사의 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