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프로야구 탄생 시기에 한창 민주화를 위해 시위를 벌이던 세대라 처음엔 야구에서 약간의 불순한 느낌이 나서 친해지지 못했다. 이후로는 경남이라는 지역 연고 덕에 자연스레 롯데의 심정적 팬이 됐는데 롯데의 경남 홀대에 저런 대우 받고는 응원 못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야구에 관한 잊지 못할 기억 하나. 지금은 고인이 된 최동원 투수가 한창 롯데 주전 투수로 활약하던 때 야구장에서 보았던 풍경이 내 마음을 결정적으로 야구에서 멀어지게 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중 최동원을 열심히 연호하며 응원하던 관중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김영삼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중이 마치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분위기에 동조되더니 나중엔 야구장에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김영삼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지역감정이 빚은 거대한 욕망의 부르짖음에 정나미가 떨어져 그 이후로 야구장을 찾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 창원지역 연고 야구팀이 생겼다. 야구를 밥보다 좋아하는 친구 덕에 야구에 대한 식견이 조금은 생겨나게 되었고 6개월여 전에 발코니에서 야구장의 함성을 생생히 들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 모든 상황이 합쳐져 이제는 빨래 걷으러 나와서 야구장의 불빛과 함성이 느껴지면 괜스레 마음이 두근대곤 한다.

2016년 야구 시즌은 우리 지역 연고의 NC 팬들에겐 요즘 말로 '웃픈'시즌이었다. 창단 몇 년 안 된 신생팀이지만 급기야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고 이 좁은 마산구장에서 구장 건립 이후 최초로 한국 시리즈가 열리는 감격과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처럼 팬들에게 완패의 악몽을 남겨 준 한국시리즈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웃픈' 중 슬픔보다 웃음에 내년을 건다. 멀리 갈 것 없이 플레이오프 1차전의 기억만 떠올려도 이유는 충분하다. 패색이 완연해서 뉴스앵커조차 LG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NC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던 경기에서 마법 같은 승리를 이뤄냈다. 바로 그 9회말 역전의 순간에 나는 남편을 태우러 가는 길에 운동장을 지나며 라디오를 틀었다. 이왕 끝난 경기는 기대할 것도 없었고 혹시 야구가 끝나면 차가 막히니 피해 가자는 심산으로 중계를 틀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불빛 훤한 야구장에서 갑작스런 환호성이 들리더니 곧이어 중계에서 포수 용덕환의 끝내기 결승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상대 투수가 앞의 선수를 거르고 손쉬운 먹잇감으로 골랐던 선수의 놀라운 반격은 올해 가을 야구 최고의 명장면이었을 것이다. 야구도, 인생도 정말 모르는 거지만 가끔 9회말 역전의 기회도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야구고 인생이니까.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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