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장수'에서 열혈 사업가로, 건새우·마른미역 등 식당 납품
건어물 조리해 안주로 내놓기도…이웃 어우러진 아지트로 인기

동네 골목에 맛있는 음식점이나 색다른 소매점이 생기면 일상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건어물연구소. 낮에는 주로 50여 가지 되는 건어물을 판매하고, 저녁에는 주인장이 손질한 건어물을 안주로 내놓는 술집으로 변신한다.

"번화가는 피하자, 동네 장사를 하자는 제 목표가 통하는 것 같아 뿌듯해요. 처음에 주변에서 길목 좋은 곳, 중심가에 가게를 차리지 않는다고 갸우뚱하더라고요."

김해 내동 연지공원 근처에 있는 건어물연구소는 번화가에서 한참 비켜나 있다. 도로변에 있지도 않기 때문에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공간이다.

번화가를 피하는 이유를 물으니 사장이 지치면 손님도 안다는 것이다. 시끄럽고, 진상 손님의 비율도 그만큼 높아지기에 감정 소모를 줄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심영주(30) 씨가 유달리 동네 장사를 고집했던 이유는 처음 장사하며 고군분투하던 곳이 '시장'이라는 이유도 한몫을 했으리라.

건어물을 판매하고 그 건어물로 술집을 운영하는 심영주 씨.

"김해 동상시장에서 주변 상인분들에게 멸치 파는 청년으로 불렸어요. 처음에는 멸치만 팔다가 지금은 각종 건어물을 취급하고 있어요."

그는 낮에는 유통맨으로 도매업 형태로 40곳 정도 되는 거래처에 멸치, 건새우, 마른미역 등을 직접 배달해 납품한다. 주로 식당 같은 곳이다.

"지금은 건어물 보관 창고로 쓰고 있지만 시장에서 23㎡(7평) 규모 멸치 가게를 열었을 때 매출이 한 달에 겨우 3만 원 정도였어요."

적은 매출에는 이유가 분명했다. '멸치 장수'라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떠밀리듯 시작했기에 곧 문을 닫으리라 여겼다. 아버지가 꾸리려던 멸치 가게는 어느새 그의 몫이 됐다.

영주 씨는 파리 날리는 가게에서 우두커니 앉아있기 일쑤였다. 남들처럼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꿈인 적도 없고 눈앞에 놓인 허리 굽은 멸치가 자신을 먹여 살려 줄 유일한 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앞뒤 재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멸치에 정을 붙이기로 마음먹으니 상품성, 중매인, 주변 상인, 수요 문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할 일이 넘쳤다.

"멸치 사러 시장에 오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소매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도매에 눈을 돌리니 한 품목으로 거래처를 뚫는 건 출발 경쟁부터 밀리는 상황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다시마를 탑차에 실어 배달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영업도 직접 해야 하니까요."

영주 씨는 타의로 멸치장사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욕심이 생겼다. 성공이든 실패든 끝을 보는 성미는 이때 발동했다. 매일 경매장에 갔다. 부산 자갈치시장은 일대 최대규모 수산물과 건어물 집하장이다.

도매업이 자리 잡은 요즈음은 경매장에 1주일에 한번 또는 두 번 나간다. 거래하는 식당들도 수급량이 조절돼 이틀에 한 번 배달하고 있다.

"새벽 경매장은 일사불란하죠. 물론 활기도 넘치고요. 처음엔 맛 좋은 게 최고라 생각했는데요. 제값에 맞는 맛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건어물연구소는 영주 씨가 직접 유통한 건어물을 가게에서 살 수도 있고, 경매장에서 공수해온 건어물로 직접 조리한 안주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무엇보다 손님을 대할 때 자신감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진다.

물론 최근 2~3년 사이에 건어물로 술집을 하는 소형 가맹점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복제된 공간처럼 느껴지는 여느 체인점 가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혼자 만의 아지트 같던 공간은 이웃 사람 모두의 아지트가 됐다. 살짝 물어보니 매출은 그가 예상하고 원했던 것보다 딱 2배 정도라고 했다.

낮에는 건어물을 납품하는 도매업과 건어물연구소서 소매업을 하고, 오후 5시 30분부터는 맥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로 가게는 넘쳐난다.

"처음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가게까지 차리고 더없이 기뻐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