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면 동대만휴게소∼창선·삼천포대교 10㎞ 3시간
아슬아슬 제방을 따라 끊어졌다 이어지는 길
잘피 일컫는 '진지리'는 맑은 바다에 지천이고

'잘피'라는 바다식물이 있다. 아주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뿌리를 통해 양분을 얻고, 꽃도 피운다. 잘피는 '바다의 밀림'으로 불린다. 수많은 바닷물고기가 잘피 숲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끼운다. 잘피는 '바다의 허파'로도 불린다. 일반 해조류와 달리 광합성을 하기에 물속 이산화탄소와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적조를 막아준다. 연안에 잘피가 있으면 그만큼 바다가 깨끗하다는 뜻이다.

남해섬 사람들은 잘피를 '진지리'라 부른다. 이전에는 섬 갯벌에 진지리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창선면 동대만에는 아직도 많이 자라고 있다.

남해바래길 8코스 진지리길은 이 동대만의 끝자락을 따라 창선·삼천포대교까지 이어진다. 오른편으로는 3번 국도가 따르고, 왼편으로는 동대만과 그 건너편으로 7코스 고사리밭길이 보인다. 정면으로는 창선·삼천포대교의 주황색 아치를 마주 보며 걷는 길이다. 이 코스는 아직 완성 전이라 안내 표지도 없고 길도 거칠다. 주로 바닷가 제방을 따라 걷다가 길이 막히면 3번 국도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해야 한다. 다만, 코스가 길지 않고 국도 주변에 카페와 식당도 많으니 먹고 마시며 쉬엄쉬엄 간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동대만 해안선 구비구비

퇴색한 느낌의 동대만휴게소에는 오래되어 지도가 지워진 8코스 표지판이 서 있다. 휴게소 바로 옆에는 무슨 예술원이라고 적힌 정원이 있다. 이순신 장군도 있고, 기린, 사자 같은 동물, 책 읽는 아이들 조형물 같은 게 가득하다. 아마 폐교에서 가져다 놓은 듯하다.

정원을 지나고 나니 갑자기 막막하다. 안내 표지가 없다.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폭이 50㎝ 정도 되는 제방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썰물 때라 제방 아래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바람까지 불어 걸음이 아찔하다.

▲ 8코스 제방길. 길이 끊어진 곳이 많아 자주 3번 국도로 나가 걸어야 한다.

곤유마을 앞에서 제방길이 끊어진다. 할 수 없이 3번 국도로 나온다. 갓길은 좁은데, 차 속도가 빨라 무섭다. 곤유마을 가운데로 난 고샅을 통해 다시 바다로 나간다.

곤유마을은 완두콩과 맥주보리, 취나물이 특산물이라고 한다. 모두 봄에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다음 농사를 위해 가지런히 갈아엎은 밭에는 이제 마늘을 심는다고 한다.

곤유마을 제방길에는 무화과가 많이 자라고 있다. 진지리는 보이지 않는다. 마침 양식 굴을 보살피던 할머니한테 여쭈니 바닷가에 떠밀려온 진지리 줄기를 들어 보인다. 실제로는 허벅지에 물이 찰 정도 깊이까지는 가야 볼 수 있단다. 제방 주변으로 풀이 많이 자라 걷기가 어렵다. 펜션을 하나 지나고 나니 다시 길이 끊어져 도로로 빠져나온다.

곤유마을 바닷가 굴 양식망. 그 위 식물 줄기가 진지리(잘피)다.

3번 국도변에는 멋진 숲도

잠시 후 당항마을 들판에 닿는다. 도로를 버리고 들판으로 들어선다. 벼 베기가 끝난 들판은 아직도 파릇파릇하다. 벼 벤 자리에서 다시 새싹이 자라고 있어서다. 생명은 이렇게 무심한 듯 끈질기다. 마을은 아담하다. 어느 집 오래된 돌담 위로 박 넝쿨이 길게 늘어졌다.

당항마을에서 마을 뒤 고개를 넘으면 강진만을 낀 율도마을이다. 이 고개를 옛사람들은 당고개라고 했다. 생긴 게 닭 모가지 같다 해서 지명을 정할 때 목 항(項)을 넣어 당항이라고 했는데, 주민들은 그냥 '당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 끝에서 다시 도로로 나와야 한다. 나오자마자 도로변에 벤치가 있는 멋진 숲이 있다. 이제부터 도로를 따르는데 가능하면 진행방향 왼쪽 갓길을 걷자. 그나마 폭이 좀 넓다. 차를 마주 보고 걷는 방향이니 아찔한 순간에 몸을 피하기도 좋다.

정면 바다 건너로 삼천포화력발전소 굴뚝이 제법 가까워졌다 싶을 때쯤 오른편으로 냉천마을 어촌체험장 건물이 나온다. 건물을 오른편에 두고 바닷가로 향한다.

마을까지 이어진 해안은 펜션이 늘어서 있다. 그 끝에 마을 갯벌체험장이 나온다. 체험비는 어른이 5000원, 아이가 3000원이다. 5월에서 11월 사이에 운영을 하는데, 6~8월이 성수기라고 한다. 조개나 굴을 캐기도 하지만, 안내문을 보니 가재처럼 생긴 '쏙'을 가장 많이 잡는 것 같다.

다시 국도로 나와 조금만 더 걸으면 냉천마을이다. 국도가 동네 한가운데를 통과한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크고 현대적인 마을이다. 항구시설도 제법 잘 돼 있다. 국도 위편 골목에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쓰던 샘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찬새미'라고 부른다. '찬샘'에서 나온 말이다. 마을 주민들 말로는 여름에는 찬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온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들이 이곳에 있는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식수로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냉천마을 '찬새미', 찬물이란 뜻. 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냉천마을 이후로는 3번 국도변을 제법 걸어야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표지판이 보이면 곧 단항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창선·삼천포대교가 시작된다.

4개 섬 연결하는 5개 다리

남해군 창선면과 사천시 대방동 삼천포항을 연결한 이 대교는 4개 섬에 서로 걸친 5개 다리로 이뤄져 있다. 다리마다 다른 공법으로 시공을 했기에, 아는 이들 사이에는 일명 '다리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단항삼거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단항교(340m)가 나온다. 5개 다리 중 유일한 육지 교량이다. 모양도 소박해서 다리인 줄 모르고 지나는 운전자들도 많을 것이다. 단항교를 지나면 주황색 아치가 두드러지는 창선대교(150m)다. 이 다리가 남해군과 사천시의 경계다. 창선대교는 건너편 늑도로 연결된다. 늑도를 지나면 초양도까지 이어지는 늑도대교(340m)가 나오고 이어 모개도까지는 초양대교(200m)다. 마지막 삼천포항까지 연결된 다리가 삼천포대교(436m)다. 단항교에서 삼천포대교까지 총길이는 3.4㎞다. 양쪽에 있는 인도를 통해 걸어서 대교를 건널 수 있다.

창선대교 바로 아래에는 단항횟집타운이 있다. 주변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횟집만 모여 있는 상업 지역이다. 주차장이 아주 넓은데다가, 큰 범선 모양을 한 남해수협활어위판장도 볼만해 사람들이 제법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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