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스포츠클럽대회 의령여고 우승 차지…전담코치도 없이 훈련, 탄생 9년 만에 쾌거

지난달 31일 경북 상주실내체육관.

전국에서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친 농구스포츠클럽들이 참가한 제9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전국스포츠클럽대회는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이 방과 후 활동이나 클럽활동 등을 통해 쌓은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

이날 경기에서 경남대표로 출전한 의령여고는 충남 온양여고를 30-15로 물리치고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이 확정되자 김영미 교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너희가 바로 주인공이야'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의령여고는 전교생이 250명에 불과한 시골의 작은 학교다. 이 학교에서 올해로 30년째 유일한 체육교사로 근무 중인 김 교사는 스포츠클럽 붐이 일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배구와 농구 등 각종 스포츠클럽을 구상했다. 그 해 김 교사는 평소 운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농구부를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공이 무서워 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농구는 고사하고 드리블이나 슛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었다"면서 "팀을 꾸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는 5명을 데리고 출전했는데, 한 명이 퇴장당해 교체 선수가 없어 4명으로 4쿼터까지 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제9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에서 우승한 의령여고 농구부.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농구에 문외한이었던 김 교사는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라온 각종 영상을 보며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고, 인근의 중학교 체육교사에게 부탁을 해 농구 기술도 습득했다.

김 교사의 노력 덕에 학생들의 기량도 꾸준히 늘었다. 상대 파울로 얻은 자유투에 모두 실패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슛쟁이가 됐고, 경기당 3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할 정도로 기량이 부쩍 늘었다.

지난 9월 열린 경남교육감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학생들은 "믿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우승을 하다니"라며 울먹였다. 김 교사도 "봐라, 노력하니까 되잖아"라며 격려했다.

김 교사는 훈련이 힘든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사주기도 하고, 생일파티도 직접 챙겨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령여고 서수경(3학년) 학생은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대회에 나가면 엄마처럼 모든 걸 챙겨주셔서 우리는 운동에만 전념하면 됐다"고 고마워했다.

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공부도 강조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농구공을 잡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도 했다. 그러자 아이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농구부에 소속된 모든 학생이 중상위권 성적을 내며 성적도 향상됐다.

주장 정애지(3학년) 학생은 "제가 또래보다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했는데 농구 덕분에 학교에 적응하기가 수월했다. 항상 선생님께서 '즐기자'고 말씀하셨는데, 승부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운동한 게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웃었다.

의령여고는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큰 고비를 맞았다. KBS <우리들의 공교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농구스타 서장훈이 직접 지도했던 서울 등촌고와 맞붙었던 것. 시골소녀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위축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반을 크게 뒤진 의령여고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마음을 다잡았고, 결국 연장 접전 끝에 28-25의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정애지 학생은 "우리가 맞붙은 팀이 모두 서울, 경기, 대전 등 대도시 학교 팀이었다. 팀마다 전담코치도 있어 우릴 얕잡아보는 것 같아 경기마다 솔직히 많이 쫄았다"면서 "그래도 전국대회에 출전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고 내려가자고 의기투합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의령여고 12명의 학생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우승 스토리는 '시골학교의 작은 기적'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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