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든 시계를 세상에 선보일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죠?"

시계는 복잡한 부품과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기계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된 시계라도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점검이나 수리가 필요하다. 고장 난 곳은 없는지, 부품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해해서 쓸고 닦고 조여야 한다. 이처럼 죽어가는 시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을 우린 '시계수리사'라고 부른다. 이번에 만난 정승우(27) 제이워치 대표는 시계 수리 명장을 넘어 '독립시계제작'까지 꿈꾸고 있다.

"내 길은 이거구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제이워치를 찾았다. 문에 들어서자 20대 후반 정도의 젊은 남성이 하얀 가운을 입고 기자를 반겼다. 내부는 정갈했다. 하얀 벽면에는 시계 잡지들이 꽂혀있고 수리 도구는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정 대표는 어떻게 시계라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빠지게 됐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기계식 시계를 접하게 됐습니다. 원형의 작은 공간 안에서 몇백 개의 부품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죠. 그때 '아, 내 길은 이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시계에 대해서 조사하고 공부했죠."

그러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는 많은 제약에 부딪혔다. 반대하는 부모님은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었지만 시계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현실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시계와 관련된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요. 말 그대로 학원이나 전문학교도 전무하죠. 금은방이라도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저를 말렸어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시계구조의 이해 및 분해조립'이라는 책을 사서 독학을 했습니다. 혼자서 시계를 분해하고 조이며 고등학교를 다 보냈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계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조사해본 결과 '국제시계연구원'이란 학원을 찾았다. 문제는 이곳이 서울에 있었고 이론과 실기를 배우기 위해선 최소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집에 손을 벌리기 싫었기에 우선 취업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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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 제이워치 대표. / 박성훈 기자

"제 인생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품질보증부'라는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고 돈을 저축하면서 미래를 꿈꿨죠.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회사에서는 끝까지 근무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시계에 대한 갈망이 끊임없이 저를 찾아왔기에 과감히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국제시계연구원을 찾아간 정 대표는 자신의 삶을 바꿔준 원장님이자 스승님을 만났다.

"기초부터 이론, 실기, 역사 등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원장님에게 기술을 전수받았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가끔 그때가 그립기도 해요."

1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유명한 시계회사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주저 없이 이력서를 냈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시계를 수리하면서 기술을 익혔지만 어느 날 한계가 찾아왔다.

"아무래도 기업이다 보니까 더 높은 기술을 배울 수가 없었어요. '5년, 10년이 흘러도 이 정도 기술에서 멈춰있겠구나'싶었죠. 저는 안정적인 직장이나 연봉을 보고 지원한 게 아니었기에 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그래서 제 스승님인 국제시계연구원 원장님께 찾아갔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자 원장님은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그래 시계를 좋아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싶으면 나와서 더 좋은 스승을 찾아가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회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더 높은 기술을 갈망하던 정 대표에게 중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거기서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시계도 직접 만지고 수리할 수 있었다.

"사실 제가 가서 일했던 곳 근처에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손목시계 중 가장 최고라고 하는 브랜드의 제품들도 수리해봤죠.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정 대표는 수리보다 '시계제작'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와 연구 시간이 필요했지만 매일 회사에 출근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독립시계제작자가 되기 위해선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수많은 부품을 전부 혼자서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수리점을 하면서 돈을 벌고 퇴근 후에는 시계제작을 공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때마침 부모님들이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사를 가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오게 됐죠."

전자식 시계 - 기계식 시계

보통 '시계 건전지가 다 됐다'는 표현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전지를 교체하는 시계가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시계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손목시계는 크게 보자면 전자식(쿼츠 시계)과 기계식(오토매틱 시계)으로 나뉩니다. 말 그대로 배터리로 작동하는 시계는 전자식 시계, 태엽으로 작동하는 시계는 기계식 시계라고 할 수 있죠.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초침이 움직일 때 전자식은 끊어지듯 움직이면서 작용하고 기계식은 물 흐르듯 작동이 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기계식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전자식과는 다르게 오차도 많이 발생하고 매일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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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우 제이워치 대표. / 박성훈 기자

"우선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는 몇 세기 전부터 만들어졌고 지금도 새로운 기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도 정말 많이 가죠. 부품들을 만드는 장면을 본다면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울 거라 자신합니다. 또 미적으로도 굉장히 아름답고 관리만 잘해주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게 매력이 아닐까요?"

현대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 본연의 임무는 사라지고 어느덧 사치품, 패션의 일종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의 기계식 시계가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 씨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다들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계는 패션적인 기능도 하거든요. 즉 나만의 개성을 살려주는 하나의 '아이템'이죠. 또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전자제품과는 다르게 관리만 잘하면 대를 이어서 물려줄 수도 있죠. 이런 것만 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시계제작자

제이워치가 문을 연 지 4개월밖에 안 됐지만 벌써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매달 80건 정도의 시계 수리가 접수됩니다. 그런데 수리를 맡기러 온 고객들 대부분이 저에게 불만을 토로해요. 이유를 물어보니 가까운 동네 수리점에 맡겼더니 흠집을 내거나 비용이 과다하게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스위스 회사에서 교육도 받았고 다수의 시계를 수리해봤다고 항상 설명을 드리죠."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많은 고객들이 정 대표를 찾아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꼭 좀 고쳐 달라'는 부탁을 했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요. 30대 남성 한 분이 정말 많이 망가진 시계를 들고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다른 수리점들은 대부분 거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도 이건 못 살리겠다 싶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길 권했지만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시계가 가장 친한 친구의 마지막 유품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안고 정말 열심히 수리했어요. 시계를 받아든 표정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그런 표정이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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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우 대표의 책상. / 박성훈 기자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지켜주는 정 대표가 진정으로 멋있어 보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스스로가 가지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정 대표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독립시계제작자'가 되는 게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무브먼트를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신 분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봐도 150여 명 정도가 가능한 기술입니다. 그래서 수리점에 있는 시간 이외에는 오로지 시계제작을 위한 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시계를 세상에 선보일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죠?"

인터뷰를 끝마치고 다시 시계 수리를 하러 가는 정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시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과거랑 변한 게 없어요. 관련 회사 취업도 힘들고 지원은 더욱 부족하죠. 자격증조차도 없어요. 조금만 지원이 된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나오고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제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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