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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장님]통영 광도면 좌진마을 조규두 이장

지난해 1월부터 이장 맡아, 조선소 등 마을 주변 업체에 가로등 설치·환경정화 등 제안…민원 발생 전 문제 해결 노력

허동정 기자 2mile@idomin.com 2016년 11월 02일 수요일

"얼추 200년 전 좌진마을에 어떤 할머니와 아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손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을 주민들에게 얼마 안 되는 논밭을 물려주며 제사를 지내 달라고 당부했고 마을 사람들은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벌초를 합니다. 음력 10월 25일에는 제사도 지냅니다. 그 전통은 마을 이장과 총무 등 서너 명이 벌초와 성묘를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좌진마을의 '의리'와 '약속'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통영시 광도면 좌진 마을 조규두(59) 이장이 했다.

조 이장은 전임 이장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면서 이 마을 이장이 됐다. 1994년부터 97년까지 새마을지도자를 지냈고 새마을지도자 광도면 수석부회장을 지내면서 주민들에게 인정받았던 것인데, 싫다는 그를 주민들이 억지로 추대했다. 지난해 1월 이장이 됐으니 알고 보면 그는 신출내기 이장이다.

좌진마을은 인근 바다 망섬의 왼편에 있다고 좌진이고 '좌진포'는 마을 옛 이름이다. 우진은 통영시 일주도로로 유명한 평림동이다.

조규두 이장은 주민 불편사항이 발생하기 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한다. /허동정 기자

조 이장은 아쉬운 이야기부터 했다.

"좌진마을회관이 있는 마을 입구에서 한려레미콘까지 약 400m 구간은 폭이 좁아 중앙선이 없는 도로입니다. 도로를 따라 조선소와 기타 중소 업체 10여 곳이 있는데 여기서 들고 나는 차량과 주민들 차량, 또는 일반 통행 차량과 소소한 접촉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도로 폭을 넓혀 중앙선을 그어주시길 바랍니다. 자치단체가 나서주시길 바랍니다."

"1021번 지방도로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들어졌습니다. 주민들이 선뜻 땅을 내놓고 괭이와 소쿠리를 들고 나와 만들었어요. 당시 이런 사연이 알려져 관에서 손수레 4대를 마을에 기증했습니다. 마을의 역사인 이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하게 해달라고 주민들이 당부하고 있는 겁니다. 또 마을 선착장도 주민들이 땅을 희사했고 산에서 돌을 지게에 지거나 이고 와 만들었습니다."

좌진마을은 마을을 관통하는 1021번 지방도로를 따라 레미콘업체와 조선소, 어업 공장 등이 들어서 있어 민원이 많은 마을이다.

조 이장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예방하자는 타입이다.

그는 문제의 사업장을 지날 때마다 "물을 뿌려달라" "덮개를 덮고 차량 운행하라" "고인 물을 치워 달라"고 당부했다.

"업체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면 주민 민원이 나오기 전에 서로 지키고 예방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마을에 있는 한 수산물 업체 인근 길이 컴컴해 업체 측에 가로등 설치를 요청했고, 회사는 조 이장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공장 건물에 가로등 2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조 이장은 마을 숙원 사업이었던 물양장 현장을 보여줬다. 그가 경상남도수산경영인연합회에 있을 때인 약 5년 전 이 사업을 구상해 당국에 거듭 요청하면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 시설은 이달 내에 완공하면서 마을 어촌계가 이용하게 된다.

조 이장은 해결되지 않는 마을 문제 때문에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좀도둑 문제인데, 2000년도에 그는 1300만 원을 도둑맞았고 주민들도 수천만 원을 도둑맞았다. 언젠가 마을에 CCTV를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장이 되고 난 뒤 이장을 포함해 마을의 여러 단체 대표 15명으로 구성된 마을개발위원회가 CCTV 설치를 찬성했다.

하지만 '인권문제'가 크게 거론되면서 2014년 결국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올 2월 또 도둑이 들면서 많은 집이 수십만 원의 손해를 입고 반지 등을 도난당했습니다. 제가 다시 CCTV 설치를 시에 건의했습니다. 설치 장소 등 기초 여건을 만들었지만 거부 여론 때문에 또다시 무산됐습니다. 수천만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데 아깝고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그와 주민 몇 명이 개인 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조 이장은 최근 마을 노인회 회장과 총무가 돌아가시면서 노인회가 없어졌고, 부녀회까지 이런저런 사연으로 없어져 버린 것을 다시 만들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장이 되고 난 다음에 노인회와 부녀회를 어렵게 다시 만든 것은 마을 화합과 단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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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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