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주머니에게도 소주 한 잔 권하고…사랑에 빠지면 온몸 던져 춤추는 쥐치

옛날 문헌에서 쥐치를 '서뢰'라고 한다. 서(鼠)는 쥐를 말한다. 담정 김려는 <우해이어보>에서 쥐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온몸이 쥐와 비슷하나 귀와 네 발의 지느러미가 없다. 색은 옅은 회색이며 껍질은 모두 비릿한 점액으로 되어 있어 끈적이므로 손으로 만지기 어렵다. 큰놈은 한자 정도인데 항상 물속에 엎드려 있다. 낚시 미끼를 잘 먹는데 입이 작아 삼키지는 못한다. 다만, 미끼의 옆쪽을 갈아서 먹는 것이 쥐와 같다."

정리하면 쥐치는 색깔이 쥐와 비슷하고 귀가 없고 네 발이 매우 짧아 지느러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며 쥐처럼 입이 작아서 미끼를 갈아서 먹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쥐치와 쥐의 유사성은 '잡아서 내놓으면 쥐처럼 찍찍거리는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과 '잠을 잘 때 해안 바위에 붙은 수초를 입에 물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시인 최승호는 <쥐치>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콧구멍도 없다. / 주둥이도 없고 혀도 없고 / 귀도 없다 눈도 없다 지느러미조차 없다 쥐치포는 쥐포일까. / 혹시 쥐고기를 얇게 썰어 붙인 게 아닐까."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도시로 나가서 비로소 '쥐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생각에 도시 사람들은 쥐도 잡아서 포를 만들어 먹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도시 판자촌은 단칸방에 부엌도 없이 아궁이만 달랑 하나 있고 수도와 변소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정도로 궁핍하였다. 쥐포는 그런 판자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연탄 화덕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쥐포를 포유류 쥐의 고기를 포로 만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시인 최승호가 "쥐치포를 보면서 / 집단적으로 벌거벗겨진 쥐치들을 생각한다. / 벌거벗은 채 철조망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 주둥이가 뾰로통한 아프리카 포로들을 생각한다"고 읊은 것도 쥐치포에 숨겨진 가난과 슬픔, 속박,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쥐치의 종류에는 쥐치, 말쥐치, 객주리, 날개 쥐치, 그물코쥐치 등이 있다. 또 이와 비슷한 것은 쥐놀래미가 있다. 쥐치는 크기와 모양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모두 다 껍질이 질기고 까끄러우며 입이 작고 머리에 가시같이 생긴 뿔이 있는 것이 공통적이다. 쥐치의 가시 뿔은 다른 물고기에게 매우 위협적이어서 천적이 없을 정도이다. 여러 쥐치 중에서 쥐포로 가공되는 것은 주로 말쥐치, 즉 큰 쥐치다.

살도 적고 가시 뿔 때문에 그물이 엉키기도 하여 옛날에는 쥐치를 먹지 않았다.

옛날에는 쥐치를 먹지 않았다. 고기의 살도 적으며 가시 뿔 때문에 그물이 엉키기도 하여서 어부들에게는 골치 아픈 물고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횟집 수족관에서 쥐치를 찾기는 쉬운 일이다. 천대받던 쥐치는 1960년대 이후 쥐치포(쥐포)가 유행하면서 선호하는 물고기가 되었다.

쥐포의 유래는 두 가지다.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우리나라에 있던 것을 일본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가공한 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쥐포처럼 새우, 학공치, 나막스(붉은 메기) 등의 살과 꼬리를 남기고 포를 떠서 건조한 것을 '화어(花魚)'라고 하는데 화어에서 쥐포가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쥐포공장은 1970년대에 삼천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쥐치가 들쑥날쑥한 해안의 해변 바위에 붙어 있는 파래와 같은 수초를 갉아먹고 자라기 때문인데, 주로 남해안이 그렇기 때문이다. 당시 100여 개의 쥐포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안선이 계속 매립되면서 쥐치의 먹이가 없어지자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1990년대 이후부터 대부분 공장이 베트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삼천포에는 30여 개의 쥐치 가공공장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대학생에게 노가리와 쥐포는 날마다 만나는 친구와 같았다. 몇백 원으로 산 쥐포 두어 마리를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소주 한 병을 가슴팍에 넣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각자 이렇게 전투 준비가 끝나면 어슬렁거리며 교정 한쪽 한적한 잔디밭에 앉아서 본질이 어떻고, 철학과 시가 어떻고, 사랑과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열띤 토론을 밤이 깊도록 이어갔다. 학문의 깊이는 쥐포 마릿수와 소주병 수에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금씩 서로 생각을 갈아먹으며 자신의 생각을 키워가는 것이 마치 쥐치가 먹이를 갈아먹고 통통하게 살찌는 것과 같았다.

쥐치는 먹이를 덥석 삼키는 것이 아니라 쥐와 같이 날카로운 한 쌍의 이빨로 먹이를 갈아먹기 때문에 낚시로 잡기 매우 어렵다. 또 아주 민감하게 채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낚싯대가 아닌 줄 낚시로 해야 한다. 김려는 <우해이어보>에 쥐치 낚시법과 먹는 법을 소개했다.

"손 배의 앞머리에 앉아서 아래의 물빛을 보고 수직으로 줄을 내리고 있다가 만약에 물빛이 약간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급하게 손을 뻗어 배 뒤쪽으로 향해 채 올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이미 입감을 뱉고 가버린다. 껍질과 내장, 머리와 꼬리는 버리고 살코기만 불에 익혀서 먹는다."

현재 진동 일대에서는 통발로 쥐치를 잡는다고 한다. 쥐치는 양식장 근처에 많이 나타나는데 양식시설에 붙어 자라는 해초와 홍합 등을 먹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통발에 홍합을 깨어서 넣고 양식장에 달아서 띄워두면 쥐치가 홍합을 좋아하여 통발 안으로 들어간다. 쥐치는 주로 양쪽 가슴지느러미를 쉴 새 없이 움직여 앞뒤로 움직이는데 마치 벌꿀새나 박각시나방이 꿀을 따는 모습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쥐치를 못생겼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눌 때 추는 아름다운 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암수가 서로 눈이 맞으면 꼬리로 원을 이루면서 춤을 추는데 처음엔 느리다가 점차 속도를 빨리해서 절정에 이르면 암컷이 해초에 산란을 하고 수컷은 뒤를 따라 사정을 한다. 바닷속 푸른 물결 아래 일렁이는 해초들 사이를 춤을 추며 유영하는 그들을 보면 누가 아름답지 않다고 하겠는가. 맑고 푸른 바닷가 바위들 틈에 다시 많은 쥐치가 돌아와 서로 몸을 비비며 노닐 때를 기다려 본다.

/글·사진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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