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민 기자가 만난 농협CEO] (6) 합천 율곡농협 강호동 조합장

'IMF 구제금융 체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는 동안 우리 기업 일선 현장에서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슬로건이 넘쳐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시기 해왔던 대로 하다가는 세계화된 자본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높았다. 세계 경제의 하부 구조에 머무는 하청 공장 시스템으로는 성장은커녕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각 기업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핵심·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마케팅 기법 변화를 꾀하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절한 무한경쟁 시스템 속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살아남은 작은 기업들을 일컬어 우리는 '강소기업'이라고 명명했고, 지금은 이러한 강소기업의 육성이야말로 탄탄한 경제 기반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인구 2800명인 합천 율곡면에 자리 잡은 율곡농협은 요즘은 보기 드문 '면 단위 협동조합'이다. 10여 년 전 시작된 농협 통폐합 정책에 따라 대부분 2∼4개 면 단위 농협이 하나로 합쳐졌고, 가까운 예로 산청군 같은 경우 군내 면 단위 협동조합이 '산청군농협' 하나로 통합된 사례도 있다. 한적한 시골 농촌 길을 달려 율곡농협 조합장실에 도착해 강호동(54) 조합장을 만났을 때, 흡사 창원공단 내 어느 기업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고민하고 수출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는 강 조합장은 율곡농협을 '강소 농협'으로 키우는 데 온 정열을 쏟아붓고 있었다.

합천 율곡농협 강호동 조합장./박일호 기자

강호동 조합장은 올해로 10년째 율곡농협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다. 1987년 농협에 입사해, 1997년 상무로 승진하고, 2006년 조합장으로 당선된 이래 3선 조합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10년간 직원 생활, 10년의 간부 활동, 10년 동안의 조합장 시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직원 시절부터 일궈온 '농협인'이라는 자긍심과 의무감은 그가 율곡농협을 명실상부한 강소농협으로 거듭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제가 조합장 될 당시) 합병 권고를 할 정도의 경영진단이 나왔다. 상당히 어려웠다. 그때 20년간의 직원 생활을 청산하고 조합장에 나서게 됐다."

처음으로 선거에 출마해 조합장에 당선된 이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무투표 당선이 됐다고 한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조합원들께서 무한신뢰를 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이죠."

- 입사 10년 만에 상무에 올랐다면 빠른 승진이다.

"농협 직원으로서 확실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던 듯싶다. 협동조합 직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이라고 할까, 고향 농협에서 뭔가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면서 공부도 틈틈이 해가면서 상무 임용고시에 합격하게 된 거다."

현재 합천군 내에서 1개 면 지역을 관할지역으로 두고 있는 농협은 율곡 농협이 유일하다.

합천 율곡농협 강호동 조합장./박일호 기자

- 농협도 어느 정도 규모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작은 조직이 점점 살아남기 힘든 건 아닌가.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규모를 키웠을 때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규모가 작으면 그만큼 섬세한 맛이 있는 것이다. 조합원 한 분 한 분 어려운 점 문제점을 찾아서 보듬고 갈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규모가 커지면 신용사업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고 본다."

10년 전 농협중앙회의 경영진단에서 시급하게 통폐합되어야 한다는 평가를 받은 율곡농협은 그 이후 어떤 길을 걸었을까?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전국농협 업적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세 번이나 받았고, 2등상도 두 번 받았다. 품질경영대상과 유통개혁 대상 등의 상도 휩쓸다시피 했다.

여기에 더해 강 조합장은 농협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경상남도 농협 조직을 대표하는 '중앙회 이사' 직으로 선임되기에 이르렀다.

규모 면으로만 따진다면 여타 대형 농협에 비해 왜소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신용사업이나 경제사업 등 어떤 분야에서든 탄탄한 기반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농협이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점은 경제, 판매사업 중심의 농협으로 자리매김시켰다는 것이다. 외부에서도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다. 일찍이 어느 지역보다 먼저 딸기 공동생산, 공동 선별 시스템을 갖추었고 2차 가공식품 생산도 하고 있다. 그리고 농협에서 직접 고구마나 야콘 농사를 지어 가공, 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전국 최초로 이루어낸 성과 중 하나다."

일종의 율곡면의 신성장동력 사업이기도 한 셈인데, 일방적으로 농민에게 농작물 선택을 강요하다 보면 위험부담이 크기에 농협이 먼저 나서 직접 농사를 짓고, 성과와 가능성이 나오면 이를 농민들에게 권장하는 방법이다.

이뿐만 아니라 율곡농협은 오래전부터 트랙터, 콤바인, 승용 이앙기, 무인헬기 등을 갖추고 영세농민들을 상대로 '대리 농사'를 지어주는 사업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율곡농협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수출이다. 3∼4년 전부터 합천은 양파 주산지로 급부상하고 있고, 율곡농협에서는 양파를 대만 등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양파 가격이 하락할 때를 대비해서 판매망을 미리 다져놓기 위해서다.

- 농산물 수출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얼마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일 듯한데.

"맞다. 지금 당장 수출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기보다는 지속적인 수출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국내 과잉 생산과 그에 따른 가격 폭락에 대비할 수 있고, 나름의 수출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계속해서 판매 스킬을 쌓아가는 것이다."

강 조합장이 끊임없이 새로운 작물을 농민들에게 보급하고, 농민들이 농협에 가져오는 농산물은 100% 다 팔아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수출시장에까지 뛰어든 데는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현재 자원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농협이 앞장서서 새로운 농사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시기다. 또 농협이 농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 농협 역할이 금융 업무나 자재 판매 등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농협 본래의 가치를 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협동조합'이라는 농협 본래의 가치 실현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강 조합장은 그간 농협의 공과 역시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공과에 대한 냉철한 판단하에서, 앞으로의 농협 가치 실현에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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