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성회 걸어온 길 30년…성, 나이, 지위 따른 차별 사라져야

'반'이라는 북 카페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한편에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경남대 근처 옛 해방촌 공중화장실 2층 냄새 나는 '둥우리 공부방'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 자물쇠를 채워두고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 아이들이 불타 죽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마산 여성들은 일하는 엄마들의 아이 걱정을 덜어주고 사회적 육아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마산에 자리잡은 경남여성회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여성단체였다.

처음에 '마산여성회'로 하니 줄임말이 '마녀'가 되고 '창원여성회'라고 하려고 하니 '창녀'가 돼 '경남여성회'로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마산여성회(경남여성회 지부), 창원여성회(경남여성회에서 분화)가 각기 존재하고 있다.

경남여성회가 30년 활동하는 동안 성폭력 특별법·가정폭력 방지법이 제정되고 호주제 폐지에 이어 성매매 방지법도 제정됐다. 성폭력상담소(1992), 성매매피해여성지원 여성인권상담소(2007)까지 개소해서 활동해왔다.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경남여성회는 '여성 후보'로 나섰다. 당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단지 여성후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었다. '여성후보 발굴을 위한 범여성단체연대'를 만들었다. 경남도의 9급 공무원 여성 차별 채용에 항의했다. 아마도 현재 40·50대 여성 공무원은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경남여성회는 여성단체와 연대해 경남도의 여성정책을 평가했다. 마침내 2002년 지방선거에는 경남도의회 비례대표로 여성 후보를 진출시켰다. 이후 여성 정치 발전소를 열고 여성 리더십을 지원했다.

여성을 가로막는 문제는 또한 경제권이었다. 경남여성회는 2010년 사회적 일자리 확대와 예비사회적기업 '밥맛 나는 부뚜막'도 열었다. 20·30세대와 성 평등사회를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전개했다. 풀뿌리마을 여성운동으로 마침내 마을공간 '마실상상'을 열고 마을에서 여성주의를 알리고 있다. 여성주의 학교로 페미니즘을 배우며 생활 속의 여성운동을 확대하고자 했다.

경남지역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만큼 정치 영역 수준도 낮다. 성평등지수 전국 최하위권인 경남도가 전국 최초로 양성평등 기금을 폐지했고 성평등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전수명 창원시의원은 직원을 성추행하고서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무학산에서 여성이 살해당하고 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은 성폭력·성희롱 등 상담에 너무 바쁘다. 한편으로 여성의 사법시험 패스율을 보며 우리 사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지만 실상은 너무나 심각하다. 여성혐오 살인, 데이트폭력, 스토킹, 직장·대학 내 성희롱 등 여성폭력은 여전하다.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됐지만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성)폭력 등 우리 사회의 권력과 힘에 의한 폭력과 차별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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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성회 30년을 뒤돌아보며 그 안에서 힘을 받았던 많은 분을 기억한다. 함께한 그 발걸음이 경남지역 여성의 역사가 되었다. 아직도 밤길이 두렵고 아이들을 혼자 내보내는 것이 불안한 사회,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고 여성들도 평생 단 한 번의 폭력도 없어야 한다. 불안이 없어야 한다. 경남지역이 유독 여성의 권한이 낮다. 경제활동참가율은 더 낮다. 이것은 우리 지역 사람들의 인식을 후퇴시킨다. 여성도 지역사회 구성원이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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