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비리의혹 덮으려 개헌 블랙홀…염치 없고 나쁜 대통령 과연 누굴까

이건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라가 아닌 나라의 봉건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이원종 비서실장)라며 강력히 반박했지만 불과 3일 만에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당선 소감문·국무회의 자료 등 청와대 내부 문서를 공식발표보다 먼저 받아본 정황이 드러났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이런 마당에 개헌론? 몰염치도 이런 몰염치가 없다. 국민 앞에 염치라는 말을 어떻게 했을까?

"지금 우리 상황이 (개헌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그런 정도로 여유가 있는 그런 상황이냐 이거죠. 청년들은 고용 절벽에 처해 갖고 하루가 급하고 이런 상황에서 뭔가 풀려나가면서 그런 얘기도 해야지 국민 앞에 염치가 있는 거지…."(2016년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에서)

염치가 없는 건 대통령을 떠받드는 무리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개헌은 깜짝쇼, 박 대통령은 진심"(새누리 김성태)이란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무능한 것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후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했을 때, "참 나쁜 대통령이다"라고 비판했던 사람이 누군가.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면서 선을 그어놓고 이처럼 느닷없이 개헌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뭘까?

답은 그동안 대통령이 제동을 건 이유를 뒤집어보면 빤해진다.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을 빨아들일 수 있는 '블랙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개헌론은 최순실 게이트·우병우 의혹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을 덮기 위한 '블랙홀'이 되는 셈이다. 이쯤 되면 "나라 꼬라지가 이상하다"는 유승민 의원의 말은 정답이다. 야당에선 비선 측근으로 지목된 최순실 게이트 관련 논란에 지지율이 급락하자 개헌론으로 국면 전환에 나서려는 노림수라는 얘기를 꺼낸다. 좀 비루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론 '탄핵론'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

최순실은 무려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드레스덴 연설문'까지.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이른바 통일대박론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았던 이 연설문은 대북관계 로드맵이기도 해서 극도의 보안 속에 내놨던 자료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공적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는 게 아니라 측근 비선 실세들의 농단에 의해 운영된다는 건 탄핵이란 말이 나와도 될 만큼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광화문 콘크리트 바닥에 있고, 고(故) 백남기 씨 부검 논란으로 또 수많은 사람이 밤을 지새우고 있는 마당 아닌가. 과연 이게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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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이 이 모양인데도 "최순실이 뭐라고 개헌을 국면전환용으로 들고나오나?"(새누리 김성태)라는 몰염치하기 짝이 없는 입은 또 뭔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적 정책현안을 함께 토론하고 책임지는 정치는 실종됐다"는 이른바 'VIP 말씀'은 맞다.

그런데 나라가 이 모양이 된 이유가 뭘까. 비선 실세로 지목되는 최순실 게이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 대통령 측근의 문제들을 덮기 위해 국민들을 향한 눈과 귀를 닫은 'VIP 말씀' 때문은 아닌가. 다시 묻고 싶다. 국민 앞에 염치라는 말을 어떻게 했을까? 참 나쁜 대통령이 과연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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