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정부정책에 외교문서까지, 대통령기록물·공무상비밀 누설
불법논란 맞물려 파장 커질 듯…"매일 청와대 자료받아" 보도도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이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정확한 문서유출 경로와 범위, 시기 등은 여전히 이번 사태의 쟁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현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 직책도 없는 일개 사인에 불과한 최 씨에게 대통령 기록물이 넘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법 논란이 일면서 파장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 또는 유출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전 유출 의혹을 제기한 JTBC 보도에 따르면 최 씨 소유 PC에서는 박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회의 발언자료를 담은 파일이 44개나 발견됐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사전 유출로 의심되는 문건만 해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2013년 5월18일) △국무회의 발언자료(2013년 7월23일, 2013년 8월6일) △첫 지방자치 업무보고(2013년 7월24일)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자료(2013년 10월31일) △통일대박론 구상을 담은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2014년 3월24일) 등이다.

취임 이전 문건은 △육영수 여사 추도식 인사말(2012년 8월) △당선 소감문(2012년 12월19일) △당선 후 첫 신년사(2012년 12월31일) △삼성동 코엑스 유세문(2012년 12월15일) △대전역 1차 유세문(2012년 11월27일)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문건(2012년 12월4일) 및 TV광고(2012년 12월2일) 등이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최 씨는 대선과정에서 연설·홍보 분야에서 개인의견과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다"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확한 유출경로와 범위, 시기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JTBC는 보도에서 문건 전달자를 박 대통령 최측근 참모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누가 전달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가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선 국기문란 불법행위로 규정한 바 있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도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통령 기록물은 무단유출은 금지되지만, 국회 또는 당청 간 업무협조 등을 위해 문서를 외부로 전달할 경우 누구에게 어떤 서류를 보냈는지 신고해야 하고, 사이버보안 관련 부서에서 이를 수시로 체크하도록 돼 있다.

또한, 청와대 보안시스템상 내부에서 생산된 문서를 온라인으로 발송하려면 허가를 받아 내부망 공식 이메일 계정을 통해서만 전송할 수 있다. 따라서 최 씨에게 문서가 건네졌다면 청와대의 적법한 시스템을 거쳤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 야권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을 쟁점화하면 사태의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어떤 내용의 문서가 얼마만큼 최 씨에게 넘어갔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최 씨가 받은 문서에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최 씨에게 유출된 보고서에는 이미 거론된 연설문이나 발언자료 수준을 넘어 국정운영이나 경제정책, 인사 등 공무와 관련된 자료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최 씨가 소유한 PC에는 '정부조직개편안 평가' '가계부채-B' '고용복지-업무보고-참고자료' 등의 이름을 단 파일이 들어 있었다. 또 '역대 경호처장 현황' '대통령당선인 대변인 선임 관련'과 같은 중요한 청와대 인사파일과 '식사, 티타임 대상자' '청와대 회동'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 말씀자료' 등 대통령의 면담일정과 관련한 파일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대외적으로 보안이 요구되는 외교자료들까지 들어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중국 특사단 추천의원 명부' '다보스포럼 특사 파견'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자료' '호주 총리 통화 참고자료' 등 매우 민감한 외교문서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 대통령의 휴가일정과 패션, 휴가관련 사진, 취임기념우표 시안, 페이스북 파일 등도 들어 있어 최 씨가 박 대통령의 개인일정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관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나아가 최 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 인사들로부터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하고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까지 운영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최 씨와 가까웠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지난달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 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30㎝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다"며 "최 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대통령의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사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유출이 이뤄진 시기도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도움을 받은 시기를 대선 과정부터 취임 후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시점까지로 언급했다.

JTBC가 보도한 유출문서의 작성시기가 박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12년 하반기부터 정부 출범 2년 차인 2014년 3월 무렵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설명과 대략 들어맞는다. 다만, 이후에도 혹여 문서유출 정황이 나온다면 사태는 더욱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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