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 덮고자 불러낸 종북놀이…도망만 하면 콤플렉스 벗어나지 못해

최순실·우병우(항간에서는 '최병우'라고도 한다)의 실체를 덮기 위한 정권의 몸부림은 눈물겹다. 대선이 1년도 넘게 남았는데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궁지에 몰려고 필사적이다. 평소 같으면 그들에게는 진위를 입증할 수 없는 회고록이 눈에 띄지도 않았거나 꼬투리를 잡고 싶더라도 내년에 써먹을 리스트에나 올려뒀을 것이다. 선거 시즌도 아닌데 여당이 색깔론을 일으키는 것은 초유의 일이니 그만큼 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다급한 쪽은 오히려 야당이고 여당은 공세를 가하며 느긋한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결재받고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는 여당과 조선일보 등의 공격에 더불어민주당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데 급급하다. 당시 정부가 대북결의안 기권 결정을 먼저 하고 북한에 알렸다고 해명하는 건 사안을 정면으로 헤쳐나가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에 미리 알렸느냐 여부가 대북결의안 기권 문제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령 결의안 대응을 북한과 논의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북한 인권에 눈감는 것도 아닐진대 통일을 지향하고 화해와 협력을 하는 사이에 그 정도도 못하는가. 그러나 종북으로 몰리기 싫은 야당에서 이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북결의안 북한 결재 주장'이 어이없는 것은 당시에는 정부의 기권이 쟁점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 제재에 앞장선 박근혜 정부의 시각이라면 대북결의안 기권부터 꼼짝없는 종북이다. 결국 분명한 것은 대북결의안 소동은 종북을 입에 달고 사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것이 종북의 실체임을 보여줄 뿐이다.

"너 빨갱이 맞지?"라는 공격에, 지목당한 쪽이 아니라고 도망가기 바쁜 것은 한국 정치에서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러나 빨갱이라고 인정하는 정공법은 찾기 어렵다. 종북으로 몰린 이가 "그래, 나 종북이야"라고 받아치지 않고, "나는 아니야", "나도 북한 좋아하지 않아"라며 도망가는 화법에서는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을 뿐이다. 아무리 잘해봐야 자신의 혐의만 벗을 뿐 상대방의 음흉함을 타박하지는 못한다. 남을 종북이라고 지목한 자가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종북으로 몰린 자가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해야 하다니 이토록 불공정한 게임은 없다. 설령 종북 아님이 증명돼도 종북 놀이를 즐긴 자는 터럭 끝도 다치지 않는다. 종북 담론의 틀 자체가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조승수 전 의원이 종북 용어를 창조하기 이전에 그것과 비슷하게 쓰인 말은 '친북'이었다. 오래전 "친북이면 어떠냐. 북한은 친남하고 남한은 친북해야지"라고 어떤 재야인사가 응수했다던 일이 생각난다. "남한은 종북하고 북한은 종남하면 어떤가?"라고 말하는 패기를 야당에서 기대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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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를 즐기는 자들이 실상 종북의 원조라는 것도 통탄스럽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막으려고 휴전선에서 총을 쏴달라고 북한에 요구한 김영삼 정권, 천안함 사건에 대해 사과 비슷한 거라도 해달라고 북한에 애걸한 이명박 정부야말로 종북이 아니면 무엇인가. 남북한 젊은이들의 희생이 서린 NLL(북방한계선)에 평화와 경제 협력을 도모한 전직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을 북한에 NLL을 팔아넘긴 것이라고 매도하여 선거 때 재미를 보고는 선거 후 입을 닦은 새누리당의 지난 대선 때 행각에서 보듯, 선거만 끝나면 비열한 색깔론도 흐지부지되는 종북놀이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빨갱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야당이 똑똑하게 대응하지 않고 '종북 무혐의'로 만족한다면 내년 대선 때는 더한 폭풍이 불어올 게 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이 안겨준 최대 교훈은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도 벌일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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