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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길에서 만난 사람들]남해 창선 왕후박나무 아래서 만난 어르신

갖은 풍파에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지 잘리고 껍질 벗겨지는 '수난'견디고 시원한 그늘 내주며 추억 선사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남해군 창선면 단항마을 왕후박나무 앞. 큰 나무 앞에 서면 자연스레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고는 뿌리에서 뻗은 열한 가지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는데 경운기 소리가 뒤에서 요란합니다. 경운기에 앉은 동네 어르신이 가만히 저를 보다가 말씀하십니다.

"우리 동네 당산나무에 합장하는 거 보고 내 흐뭇해서 말을 건다!"

매년 섣달 그믐이면 동네에서 당제를 지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답니다. 말끝에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셀마하고 사라하고 태풍이 불어갖고 마 가지가 많이 뿔라짔다. 그라고 언젠가 나무 옆에 밭주인이 밭에 그늘진다고 가지를 안 싹 쳐삔기라. 나무가 둥그러이 그랬는데, 한쪽이 싹 짤맀다가 인자 잔가지가 나고 해서 좀 낫다."

그러고 보니 서쪽 나뭇가지가 짧습니다. 후박나무의 수난사는 계속됩니다.

"셀마 태풍 오고 나서 나무가 이름있는 나무라고 해서 약방에서 사람이 와서 껍디를 당시에 키로로 만 오천 원씩 받았다. 그때는 이 나무 껍디 뱄기는 게 일이라. 그때 가지가 많이 뿔라졌어요. 껍디를 뺏기갖고 밀로 섞어가 술로 담가 무면 빼빼 모른 사람도 몸이 대번에 불어삔다 안 하나."

후박나무 껍질은 후박피(厚朴皮)라고 해서 천식과 위장병에 좋다고 합니다. 영험한 나무로 소문이 나서 유달리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모양입니다.

왕후박나무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추억을 만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내 인자 팔십이 다 됐는데, 초등학교 댕길 때 쬐그만 것들 서너 명이 매달리고 올라가서 그네를 타고 뭐 많이 그랬다. 인자는 뭐 이기 국보(천연기념물)가 돼나서 함부로 손을 못 댄다. 그래도 여름에 이 나무 밑에 앉으면 참 시원코 좋다. 바람이 일로 불면 굉장히 써언해요. 작년에는 동네 사업하는 사람이 돈 좀 보태고 해서 한 300만 원 모있거든. 그래갖고 사시미(회)도 사 묵고, 닭도 사 묵고 별걸 다 사 묵고 그랬다."

긴 말씀 끝 한마디에 가슴이 짠해진다. "여름에 꼭 한 번 들리세요. 여 막걸리가 참 좋아. 같이 한 사발 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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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