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막히는 대한민국호 잠수함…한탄보다 끈질기게 바꿔나가야

요즘 난 토끼가 된 것 같다. 껑충껑충 뛰면서 어디로 달려가는 동요 속 즐거운 토끼가 아니다. 달 밝은 밤, 떡방아를 찧는 낭만 있는 토끼도 아니고, 자라를 속여 위기를 탈출한 꾀돌이 토끼도 아니다. 지금 난 잠수함에 갇힌 토끼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옛날, 잠수함 밑바닥으로 내려 보내져 산소량을 측정했던 토끼 말이다. 점점 더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산소가 부족해 헐떡거렸던 토끼,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소라고 할 수 있는 인권, 상식, 염치도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까지 사라져가는 요즘,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네가 언제까지 숨을 쉴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캄캄한 잠수함에 갇혀 누군가에게 실험을 당하는 기분이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성을 차릴수록 숨은 더 가빠진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일수록 정신은 더 혼미해진다. 정신 줄을 놓지 않기 위해 버둥거려 보지만 나를 둘러싼 잠수함은 견고하다. 날이 갈수록 파렴치한 위정자들의 토끼몰이는 더욱 거세진다. 과연, 나는 살아갈 산소가 부족한 대한민국호 잠수함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토끼가 잠수함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조지 레이코프 미국 할배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조언을 명심해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코끼리가 더욱 생각나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나를 잠수함에 가둔 이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정현이 단식을 하든 말든, 송민순이 회고록을 냈든 말든, 김진태가 간첩 놀이를 하든 말든, 백인하가 거짓말을 하든 말든, 연예인이 성매매를 하든 말든, 김제동이 영창을 갔든 말든, 여당이 종북을 울리든 말든, 이렇든 저렇든,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선 안 된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인간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들의 언행에 흥분하고 맞받아치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토끼가 대한민국 잠수함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물론, 어려운 점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뇌 용량의 한계에 부딪힐 만큼 기억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4대 강 재앙에서부터 세월호 진상규명까지, 천하의 알파고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만큼 부정과 부패, 재난과 사고가 끊이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재난이 터지면 비리로 덮고, 비리가 커지면 연예뉴스로 돌리고, 연예뉴스가 막히면 안보를 외치는 물 타기 수법을 구사해왔다. 시간을 끌면 피로감이 쌓이고, 피로감이 쌓이면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심리를 잘 활용해 온 것이다. 그들의 수법은 늘 같고, 늘 같은 수법에 늘 당해왔다.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나만의 비책이 필요하다. 의외로 간단한 방법을 찾았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그런데?'라는 물음을 입에 달고 살면 된다. 밥을 먹다가도 '그런데 세월호는?' 단풍놀이를 하다가도 '그런데 사드는?' 데이트를 하다가도 '그런데 최순실은?' 소주를 마시다가도 '그런데 백남기는?' 앞뒤 맥락 없이 끈질기게 묻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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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밖에 없는 인생, 하필이면 왜 대한민국에 태어났을까? 한탄을 해봐야 소용없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대한민국을 바꿀 수밖에 없다.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기록되는 것이다. 내가 오늘을 기억하는 한, 그냥 흘러갈 역사는 없다.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그날, 내 손으로 캄캄한 대한민국호 잠수함에서 탈출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캄캄했던 30대를 지나, 나의 40대는 내 손으로 찬란한 태양을 맞을 것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너무 큰 목표다. 적어도 '사람 같은 대통령'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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