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사유화 시도 의혹…본격수사 '관심'

현 정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대기업들이 800억원대 거금을 출연해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사유화하려 했다는 의혹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대기업들이 이들 재단에 거액을 몰아준 배경에 관심이 쏠렸지만, 최씨가 직접 소유하거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진 개인 회사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두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최씨가 개입한 정황이 나날이 구체화하는 가운데 '의혹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검찰도 강제 수사권을 활용한 본격수사에 돌입할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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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재단 800억 누가 왜 '몰아줬나'

20일 법조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지금껏 의혹의 초점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창립, 모금 경위에 주로 맞춰졌다.

미르는 작년 10월, K스포츠는 올해 1월 각각 설립됐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초고속 법인 설립 허가', '창립총회 회의록 거짓 작성' 의혹 등이 제기됐다.

재단법인 설립 허가에는 통상 3주의 시간이 걸리는데 문체부는 담당자를 굳이 서울로 출장 보내면서까지 두 재단의 설립을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갑자기 정해진 미르재단 출범 일에 맞추기 위해 창립총회가 열리는 서울 팔레스호텔로 기업 관계자들이 출연증서와 법인 인감을 들고 모이라는 '소집령'이 떨어졌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모금액 역시 국내 재계 순위에 따라 출연한 62개 대기업마다 맞춰 사실상 할당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면서 자발적 기부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은 "기업들이 작년 여름부터 논의를 시작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부인했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당시 경제수석이던 청와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모금 배경으로 의심받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기업들에 할당해서 한 것"이라는 대기업 관계자의 녹취록을 공개한 바 있다.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역시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가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관련 내사는 흐지부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안 수석 본인은 "어떤 기업의 임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의혹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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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 최순실·차은택, 두 재단 '실소유주'인가

모금 단계를 넘어가면 양대 재단의 실질적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실소유주'가 누구인지에 의혹의 초점이 맞춰진다.

문화 사업을 한다는 미르재단은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계의 황태자'로 급부상한 차은택(47) 광고 감독이 직·간접적으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피어오른다.

싸이 등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 제작자로 널리 알려진 차씨는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이듬해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돼 단박에 문화 및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부에 진입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위촉되고 나서 대학 스승인 김종덕 홍익대 교수가 문체부 장관에,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발탁되면서 문화계에서는 차씨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차씨는 법률적으로는 미르재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대학원 은사인 김형수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미르재단 이사장과 주요 이사들이 차씨 인맥으로 채워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게다가 차씨의 가까운 업계 후배가 미르재단 사무실을 임차한 사실까지 알려져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K스포츠재단으로 넘어오면 의혹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최씨 역시 K스포츠재단과는 표면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 재단의 2대 이사장이었다가 최근 논란 끝에 사임한 정동춘(55)씨가 최씨가 주로 단골로 다니던 마사지센터를 운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씨 개입 의혹이 강하게 불거졌다.

게다가 재단의 가까운 거리에 세워진 더블루케이, 독일에 세운 더블루케이 독일법인과 비덱스포츠의 존재가 최근 알려졌다.

독일 기업정보 사이트인 콤팔리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스포츠 인재 육성, 스포츠 교류 사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한 비덱스포츠는 최씨 모녀가 가진 개인 회사다.

더블루케이는 등기부상 최씨가 직접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지만 '회장님'으로 불린 최씨가 실제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펜싱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최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40)씨가 이 회사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려놓았다. 고씨는 박 대통령이 애용한 것으로 세간에 화제가 된 가죽 핸드백을 만든 빌로밀로 대표를 지냈다.

독일에서 거주하는 최씨가 케이스포츠재단을 통해 모금한 돈을 자신의 개인회사인 비덱을 통해 빼내 쓰려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경향신문은 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 관계자가 "K스포츠재단이 올 초 '2020 도쿄 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 지원' 사업에 80억원 투자를 제안하면서 사업 주관사는 독일의 비덱스포츠'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야당은 독일에서 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씨의 승마 훈련을 돌보는 최씨가 '유망주 지원' 명분으로 K스포츠재단에 들어온 돈을 사유화하려는 것이라면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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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 파고 높아지고 고심 깊어지는 검찰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 내용을 중심으로 기초 수사를 벌이고 있다. 두 재단의 모금 경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보면서도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범죄 혐의점이 아직 뚜렷하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 등에 나오는 의혹은 스크린하고 있다. 다만, 의혹이 제기된다고 해서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확인할 수는 없다. 수사기관은 어느 정도 죄명을 갖고 하는 곳"이라며 "고발 내용을 중심으로 범죄 혐의가 있는지 보고 있다"고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후속보도를 통해 최씨의 재단 사유화 의혹이 증폭되자 검찰 안팎에선 본격적인 내사 착수나 입건 단계로 전환할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당은 최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들의 설립 자금, 호텔 인수 자금을 어떻게 해외로 옮겼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두 재단이 업무 문서를 파쇄하고 해체 수순을 밟는 등 증거 인멸 우려가 제기된 점도 강제수사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검찰이 청와대 등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겠느냐는 데 의문도 제기된다. 아울러 한편에서는 그만큼 신중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야권은 이번 사건이 특수부가 아닌 송치 사건을 주로 다루는 형사부에 배당된 것을 놓고 수사 의지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20일 재단 설립 허가에 관여한 문체부 관계자들을 불러 설립 과정과 외압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최씨 딸인 정유라(20)씨의 특혜 입학, 부실 학사 관리 등 의혹이 불거져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낙마한 가운데 일부 교수·학생들이 부정 의혹 수사를 주장해 수사로 이어질지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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