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물하고 싶어요"

최근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장소가 전국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전시회 관람, 영화 감상,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음료와 함께 즐기자'는 취지의 공간이다. 창원시 사림동에 위치한 '스페이스 펀'도 이와 같은 장소다. 하지만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건물 유리창에 적혀있는 '스페이스 펀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결되는 재미를 경험하는 공간입니다'라는 문구가 이를 잘 나타낸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개인의 관계망이 넓어지길 바란다는 스페이스 펀은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물하고 있다. 그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만든 안성현(36) 대표를 만나봤다.

사람·운동·문화

안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여러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 장사에 눈을 뜨게 됐고 직업으로 이어졌다.

"부모님의 철학, 생활 습관들이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머니는 제 성격상 회사에 취직하는 것보다 장사를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장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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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펀' 대표. / 박성훈 기자

얼핏 부유한 가정에서 고생 없이 자란 듯 보였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신문 배달, A/S 방문기사, 의류판매 등 돌이켜 보니까 참 많이도 했네요. 이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시작했어요. 미래에 하고 싶은 사업을 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습니다. 덕분에 아무리 힘든 순간도 지나고 보면 다음으로 갈 수 있는 힘이자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또래들보다 먼저 깨달을 수 있었죠."

안 대표는 스페이스 펀 이외에도 헬스장과 사우나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운동과 문화, 이 두 가지가 처음에는 선뜻 매치가 되지 않았다.

"운동을 가장 좋아해 헬스장을 시작했지만 그 못지않게 사람과 문화를 좋아했습니다.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세 가지를 결합한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대학 후배가 창원에서 문화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이때다 싶어 바로 연락을 해 스페이스 펀을 만들게 됐습니다."

사람이 매개체가 되는 공간

스페이스 펀은 사실 안 대표의 가족이 거주하던 주택이었다. 지하부터 1층, 2층 그리고 옥상까지, 주택 전체를 개조해 지금의 스페이스 펀을 만들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가 원래는 지하주차장이었고 1층은 주방과 안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정확한 사업 구상과 계획을 말씀드렸고 결국 허락해 주셨어요. 그리고 집을 무료로 받은 게 아닙니다. 현재 주위 시세보다 더 많은 월세를 꼬박꼬박 부모님께 지급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펀은 건물 외관부터 다른 곳과는 차별화가 느껴졌다. 오직 파란색과 하얀색으로만 도색해 색다른 느낌을 연출했고 은은한 조명이 건물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선 일명 '파란 집'으로 불린다.

"스페이스 펀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상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죠.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파란색과 하얀색을 생각하게 됐어요. 깨끗하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색상이잖아요. 사람들도 이런 부분을 특이해하고 좋아해 주는 것 같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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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펀'. / 박성훈 기자

내부는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목욕탕 타일이 벽면에 붙어있고 샤워기, 아령들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운동·문화를 결합해 보자'는 생각이 결국 지금의 스페이스 펀을 만들었죠. 처음에는 진짜 목욕탕처럼 만들려고 했어요. 탕 안에서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했죠. 하지만 너무 실험적으로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어서 느낌만 연출할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특색 있고 재미있는 공간에서 문화를 즐긴다면 더 재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스페이스 펀은 앞서 말했듯 '사람'이 매개체가 되는 공간을 지향한다. 보통의 복합문화공간처럼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간을 찾는 모든 인원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셜다이닝'(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행위)이나 '강좌' 같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 동료나 친구 말고는 누군가를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전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소소한 행위를 하고 단체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통의 관심사를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찾는 거죠."

최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야심차게 준비한 와인콘서트나 김광석 추모콘서트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싶은 욕심이 났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콘서트'를 떠올리게 됐고 지역 인디밴드나 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서 다양한 공연을 유치했습니다. 공통된 관심사를 한 공간에서 나누다 보니 입소문도 빨리 퍼지고 홍보도 자연스럽게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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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펀' 대표. / 박성훈 기자

서로가 상생하는 길

이뿐만 아니라 안 대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임을 자청하고 만든 곳인데 지역의 문화나 예술적인 부분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지하에 전시하고 독립출판물 소개나 사회적 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역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온라인 판매나 전시가 대부분이라 오프라인 판로는 부족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제가 그 판로 역할을 자처했어요. 이런 노력이 서로가 상생하는 길이 아닐까요?"

경영관 또한 특별했다. 대학교 인근에 있지만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정하지 않았다.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판다'는 개념으로 스페이스 펀을 경영했다.

"저는 처음부터 대학교 학생들을 타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앞에서 판매하는 가격으로 팔게 되면 이윤을 맞출 수가 없어요. 저희는 음료만 소비하는 카페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이잖아요. 재미있는 활동과 프로그램을 음료와 같이 구매하는 거죠. 그래서 문화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의 소비가 가능한 '20대 중후반 여성'들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생각이 적중했고 여성분들은 물론 남성분들까지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안 씨는 인터뷰하는 동안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어찌 어려움이 없을까? 이 물음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익과 비용의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양질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더 제공하고 싶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이 발생하죠. 예를 들어 저희가 유치하는 공연이 매진으로 이어져도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기는 참 힘듭니다. 그래도 제가 이 공간을 운영하는 동안은 그분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예술인들과 같이하는 프로그램은 정기적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힘든 순간이 가끔 찾아오지만 행복해하는 고객을 보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고 한다.

"저희 공간을 찾아주시는 고객들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표정이 달라요. 뭔지 모를 기대와 설렘이 공존하는 얼굴이죠. 제가 금전적으로 조금 힘들다고 고객을 외면한다면 서로 간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죠. 그 행복한 표정을 지켜나가는 게 현재로써 저한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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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테이블. / 박성훈 기자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정체성

현재 많은 창업 준비생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먼저 창업을 경험한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가'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확신이 선다면 그때는 시작해야죠. 단순한 복합문화공간은 더 이상 힘들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해보고 많은 단체들과 협력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야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많은 시도와 도전을 했지만 아직 스페이스 펀에 접목해보고 싶은 것들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당장 내년부터 실행에 옮기기 위해 눈코 뜰 새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서 이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건이 됐습니다. 구상하고 있는 것 중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옥상콘서트'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소음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이웃 주민들과 잘 협의해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야죠. 2층을 게스트 하우스나 소규모 공방으로 바꾸는 준비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또 제가 하고 있는 헬스장과 접목시켜 다이어트 강의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유쾌한 인터뷰였다. 자신의 인생과 사업 구상을 말하는 모습에서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니 뜻밖에도 아내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했습니다. 잠깐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지만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와이프와 옷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을 불만 없이 너무 잘 따라줬습니다. 고마운 사람이죠. 아내 덕분에 점점 사업을 넓혀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이젠 그동안 했던 고생을 다 보상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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