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11) 자영업의 자격

◇'취업절벽'에 막막한 세대는 중학교 졸업하면 진로 결정?

며칠 전 흥미로운 얘기를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초에 중퇴하고, 본격적인 수험준비를 거쳐 지난 9월 말 제주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 여학생의 얘기를. 인터뷰한 얘기를 찬찬히 읽어보니 주관이 뚜렷한 당찬 청소년이었죠. 그는 오히려 "막바지 대학 수능 준비를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어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더군요.

막상 충격을 받은 일은 그 직후 주변 사람에게 들은 얘기였습니다. "친구가 공무원시험학원에서 근무하는데 요즘에는 고교 1학년부터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하더군요"라는. 벌써 3~4년 전부터 이런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요즘 목공소에 들여놓은 텔레비전 덕분에 공무원시험(공시) 학원생들의 생활을 그린 드라마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지만 '고교 공시생'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했습니다. 하긴 십수 년 전 제 아이 고교 진학 때 우연히 알게 된 한 여중생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외국어고교 입학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그땐 과열된 조기교육 열풍 탓이라고 그냥 그러려니 넘겼습니다만.

아무튼 왜? 라는 물음이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 나이 때 제 머릿속은 그냥 노는 것만 꽉 차있던 것 같은데. 부모님 몰래 마시던 술이 짜릿했고, 대학 입학 준비를 걱정하면서도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좋았던 시절이었는데.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그 정도 나이에 진로를 딱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좀 더 천천히 고민하고, 헤매고, 가다 돌아오고, 후회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좀 놀고…. 그래도 될 텐데요.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제가 꼰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막말로 중학교 졸업한 정도의 아이들에게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돼버린 것 같아 미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딱히 제 잘못인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왜냐면 저도 그런 짓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 아들이 고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제 출근길 중간에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있어 가끔 태워주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 아들이 축구에 미쳐있어 좀 걱정했던 시깁니다.

"대학 가지 않아도 된다. 만 20살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어차피 군대를 다녀와야 하니 3학년 여름방학 때쯤 지원해서 신체검사를 받고, 수업일수가 차고 나면 겨울방학 때쯤 입대 가능하도록 일정을 짜봐라. 날짜가 잘 맞으면 만 20살에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그러면 대학 안 가도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100만 원쯤은 벌 수 있을 거다. 수입 가운데 70% 정도 저축만 한다면 집에서 그냥 먹고 자게 해 주마. 그때부터 네 인생을 다시 설계해도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죠. 완전 꼰대짓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사회와 마찬가지로 저도 제 아이에게 진로 결정을 강요한 것입니다. 당시 즉답을 피한 제 아들은 며칠 뒤 제게 '대학 가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 사진은 창원 한 상업지역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생계절벽' 막막한 50대는 자영업으로

오늘 고교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제주도에 통나무집 수십 채를 지어 펜션을 운영하는 친굽니다. 한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제주도에서 20년가량 한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그는 제 수준에서 보면 '입이 떡 벌어질' 규모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죠. 몇 년 전부터는 "힘이 들기도 하고 해서 이제 더이상 규모 늘리는 것은 그만둬야겠다"고 말하던 그는 이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노라고 얘기하더군요. 저야 사업을 모르지만 듣기에 꽤 매력적인 일이더군요. 비용도 얼핏 십 수억 원이 드는 사업인 것 같았는데 '마지막 일'임을 강조하더군요.

그가 준비하는 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쳇말로 먹고살 만한 그가 힘이 든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힘을 내서 새 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란 다 그런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노후 생계대책 마련에 마음이 바쁜 퇴직 50대가 재취업보다는 쉽게 자영업에 뛰어드는 거의 모든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인가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에 몸을 던져야 하는 불안감은 물론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 제대로 된 생활급이 보장되는 연금수급자가 아닌 다음에야 노후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우리사회 현실에서 이런 장년층이 늘어날수록 사회적 불안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겠죠.

통계에서 보면 전체 자영업자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50대 자영업자는 갈수록 폭증해 전체의 60%에 육박한다더군요. 숫자로도 300만 명을 훨씬 넘었고. 아마 베이비 부머인 50대의 자영업 진출은 당분간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하는군요. 반면 자영업자의 수입은 임금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10년 전의 자영업 평균소득보다도 훨씬 낮다는 통계도 확인되고요.

저도 자영업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넘었습니다. 어떻게든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주변에서도 다들 장사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높으니까 저도 불안감이 점점 높아갑니다.

다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몇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단지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생각으로 업종을 선택하지 말자. 돈이 그리 쉽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서두르지 말자. 허둥대면 실수가 나오고, 실수가 잦으면 고객이 점점 떨어지니까요. 무리한 빚을 내지 말자. 돈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진짜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니까요. 절대로 우는 소리 하지 말자. 잘라서 말하면 울어봐야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면밀한 사업계획도, 자금 조달방안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든 저이지만 한 가지 원칙은 있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내 속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잘하든 못하든 내가 하고픈 일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대충 맞아왔습니다. 예상한 대로 썩 풍족한 수입을 얻지는 못하지만, 돈 욕심을 줄인 만큼 견딜 만은 합니다.

◇50대가 휴전선 경계병으로 입대하면?

오늘 제 얘기는 많이 우울해서 스스로도 기분이 축 처집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 합니다. 50대 퇴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성 제안입니다.

쉰 살이 되면 군대를 다시 보내는 것입니다. 특히 부인이 추천, 동의, 제안하는 경우에는 우선 의무 선발하도록 하고. 임무는 155마일 휴전선 경계병으로요. 무슨 맞아 죽을 소리냐고요?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단점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장점만 말씀드립니다.

먼저 급여는 200만 원쯤 주는 겁니다. 그 급여는 무조건 부인의 계좌로, 없는 경우에는 가족들에게 송금. 집에 있어봐야 돈만 깨먹을 50대 남자사람을 군대에 보내면 지출은 없어지고, 많든 적든 수입이 창출됩니다. 골치 아픈 50대의 몸값으로.

두 번째로는 상대적으로 밤잠이 적은 연령이니 야간 경계병으로 딱 적임자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원시여서 먼 곳의 표적이 잘 보이니 사격 솜씨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국가적으로는 의료비가 대폭 절감됩니다. 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연령대의 사람들을 매일 일정한 시각에 깨워 강제로 운동을 시키니 얼마나 건강해지겠습니까. 휴전선을 매일 걷게 되니 일부러 등산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다 장년층의 공백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니 청년 취업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나잇살을 먹었으니 군대폭력도 크게 줄어 군 문화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겁니다. 젊은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관도 투철한 세대이니 얼마나 보초도 잘 서겠습니까.

머 이런 이유로 50대 군 입대를 추진하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요. 제가 드린 말씀이 모두 농담인 것은 '안비밀'입니다.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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