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크아루트바슐 지음…사고 전환 일상 속 '도전 정신·공감' 불러와

전례 없이 더웠던 지난여름을 어찌하다 보니 에어컨 없이 보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사를 오면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올여름만 나면 이사를 할 것으로 예상이 됐고 나름 고층이다 보니 창문만 열어 놓으면 상대적으로 시원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독히도 더웠고 바람 한 점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집안 온도는 32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설치해야 하나?'

그토록 허망하게 더위가 물러가기 직전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가정용 전기 소비자들만 봉인 것 같은 한전과 정부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조금이라도 식히는 데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사이 그렇게 여름이 지났다. 없으니 버텨지더라. 있었다면 쉽게 버티지 못했을 문명의 이기 아니었겠는가.

우리는 때때로 각성한다. 우연히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 화장품과 관련한 동물실험 기사에 분노하고 의류와 가방 등을 만들기 위해 고통스럽게 털을 뜯기고 가죽이 벗겨지는 거위와 어린 악어의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울분이 차오른다.

좀 더 빨리, 조금 더 실한 고기를 얻고자 '식용'이란 이름의 생명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에 나의 식생활을 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쉽게 타협한다. 체념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늘 머릿속에 남는다. 모른 척, 못 본 척, 편리함만 좇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과 그녀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쓰레기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그 정도에 만족했을 뿐, 그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던 산드라. 2009년 9월의 어느 날, 영화 초대권을 얻은 그녀는 영화 관람보다도 그 뒤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 일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행성(Plastic Planet)> (감독 베르너 보테)에서 지구를 뒤덮어버린 플라스틱의 적나라한 영향과 폐해를 목격한 그녀는, 더는 이전과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친구들은 결말을 정해놓은 듯 한결같이 말했다.

"근데 어쩔 수 없잖아?"

"플라스틱은 이미 대세거든."

"네가 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걸?"

산드라는 고독한 결단을 내리고 공표한다.

"우리 집에서 해볼게! 한 달 동안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겠어. 나는 그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1부 모든 시작은 다 어려운 법, 2부 이제 출발이다, 3부 실험을 넘어서로 이어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애써 외면했던 플라스틱 세상을 직시했고, 결심했다. 이 어려운 실험을 즐기려 했고,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했다.

대체품을 찾고 대체품이 없으면 아예 안 쓸 수도 있다는 사고의 전환에 이르렀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격언을 벗 삼아 시작한 이 프로젝트 이후 이 가족은 2년째 플라스틱 없는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 평범한 가정이 부딪히는 현실과 그럼에도 변화하는 과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팁을 준다.

덕분에 아직은 아주 많은 타협을 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319쪽, 양철북,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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