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사업 그 이후] (상) 낙동강 자전거길 달려봤더니

지난 2009년 1월 이명박 정부는 4대 강 살리기, 녹색 교통망 구축 등 36개 녹색뉴딜사업을 담은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 사업으로 낙동강을 비롯한 물줄기를 따라 자전거길이 개통됐고, 친수공간인 수변공원이 들어섰다. <경남도민일보>는 '녹색뉴딜' 이후 자전거길·수변공원 운영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 3일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중 한 구간인 '낙동강 자전거길' 일부 구간(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약 55㎞)을 달려봤다. 결과적으로 이용자 안전과 편의는 무시됐고, 관리 상태도 허술했다. 결국 '토목의, 토목에 의한, 토목을 위한' 자전거길이었던 셈이다.

3일 오전 11시 30분 경남 창녕군 이방면 등림리 '합천창녕보 인증센터'에서 시작, 보를 통과해 자전거길을 따라 합천군 청덕면·의령군 낙서면·창녕군 남지읍을 차례로 지났다.

시작과 함께 합천 구간에서 관리가 엉망인 탄력봉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와 차량이 함께 달리는 길이어서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곳임에도 탄력봉이 꺾여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전거길 관리기관은 구간마다 달라졌다. 합천군, 의령군, 창녕군 등 지자체뿐만 아니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진영국토관리사무소·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기관인 구간도 더러 있었다. 불편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표지판이 안내를 하고 있었지만 구간마다 관리기관이 달라지기에 바뀌는 연락처를 때마다 재확인해야 하는 불편이 뒤따랐다.

자전거전용도로가 끊기는 구간도 꽤 많았는데, 정작 자전거 이용자 안전을 책임져야 할 도로횡단 표시가 엉망이었다. 도로횡단 표시가 아예 없는 곳도 있었고, 횡단이 불가능한 곳에 엉뚱하게 표시를 한 곳도 있었다.

분리대 때문에 도로횡단이 불가능함에도 횡단 표시가 돼 있다(의령군 낙서면).

의령군 낙서면 전화리에서 자전거길 안내판이 산길을 가리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구간은 박진고개를 그대로 넘는 곳으로 자전거 국토 종주길 이용자에게 악명(?)이 높았다. 박진고개를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바로 옆으로는 대형 트럭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강이 보이지 않는 구간에 낙동강 자전거길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았다.

문제는 오르막길이 아니라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붙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이를 경고하는 문구는 한참을 내려가서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요철을 조심하라고 바닥에 페인트로 써둔 정도였다.

잠시 후 나타난 1008번 국도 창녕·영산 방면과 20번 국도 의령·신반으로 나뉘는 교차로에는 남지 유채밭 방향 자전거길이 없었다. 자전거 이용자가 조심해서 길을 건널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박진교를 통과해 창녕군 남지읍에 들어섰다. 다시 제대로 된 낙동강 자전거길이 시작되나 싶더니 6㎞가량 지나 '남지개비리길'이 나왔다.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강을 따라 나 있는 길은 자전거 이용이 불가했다. 개비리길을 이용하는 보행자와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산길을 선택해야 했다.

산길이 시작하는 곳에는 창녕소방서에서 마련한 119구급함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3분의 2가량 남은 식염수 한 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겨 있어야 할 자물쇠도 사라지고 없었다.

남지개비리길 구간 산길도 박진고개와 마찬가지로 내리막길 사고 위험을 알리는 경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땅이 젖어 있었는데, 결국 주의는 자전거 이용자 몫이었다.

중간 목적지인 남지 유채밭을 지나, 남지오거리 회전교차로 인근 자전거길에서 방향을 잃었다. 자전거길이 끊기는 구간임에도 이를 표시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차도로 내려가 달리다 다시 돌아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자전거길 지도정보서비스'에는 없는, 남지대교 위로 나 있는 자전거길을 찾을 수 있었다.

오후 5시 30분께 인증센터가 있는 창녕함안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강변역에서 출발,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낙동강 하굿둑으로 향하는 정병건(23·경기도 안산) 씨를 만났다. 그에게 자전거길을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물어봤다.

그는 "이용자 편의를 무시한 구간이 많았고 관리도 엉망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용자들이 추천하는 '우회도로'가 있을 정도라고. 정 씨는 "곡선 구간에서 높은 턱을 만나 넘어지면서 다치기도 했다"며 세심한 안내가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자전거길을 만든 사람들은 한 번도 이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가 질 무렵이 다가오자 자전거를 탄 이들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서다. 결국 창녕군 부곡면 학포리 본포교까지 가려했던 기자도 부곡면 청암리 임해진삼거리에서 취재를 마쳐야 했다. 절벽을 따라 나있는 어둡고 위험한 찻길을 자전거를 끌고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경운기도로와 공유하는 자전거길(함안군 칠서면).

낙동강 자전거길은 사실상 자전거길이라 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았다. 경운기도로와 자전거길이 겹치는 구간이 있는 등 낙동강 자전거길은 대부분이 농작로·지방도를 공유했다.

정보를 제대로 담지 못한 노선안내도는 있으나마나 했다. '자전거 규정 속도 20㎞'라는 안내판도 속도계가 없는 자전거 이용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바닥에는 '낙동강 하굿둑 90㎞'라고 적어두고 100m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남은 거리를 85㎞라고 적어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비합리적인 코스, 자전거를 고려하지 않은 경사 구간 등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두고 지나친 편의주의가 낳은 결과물이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이 낳은 불합리, 농작로·지방도를 공유하는 데서 발생하는 사고 위험을 이용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엄연한 책임 회피이다.

/글·사진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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