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6) 팀 같은 친구들과 폰세바돈~폰페라다 28.6km

카미노에서 가장 높다는 푼토봉

아직 어두운 새벽, 4시 반쯤에 동료 순례자들이 거의 다 일어났습니다. 이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의 유쾌한 호스피탈레로(자원봉사자) 미겔이 준비해 놓은 빵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함께 폰세바돈을 떠납니다. 다음에 오게 되면 다시 묵을 것을 다짐하면서요. 10명이 함께 출발을 하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팀과 며칠째 그룹이 되어 걷고 있네요.

30분가량 가니 카미노에서 유명한 '쿠르스 데 페로(La Curz de Ferro)'라는 철십자가가 나옵니다. 철십자가는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저는 돌도 짐이 될 것 같아 안 가져 왔는데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직 환해지지는 않았지만 여명에 버티고 서 있는 십자가를 보니 경외심마저 들었어요. 모두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경건한 새벽입니다.

철십자가 '쿠르스 데 페로(La Curz de Ferro)'. 순례자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순례자들이 매달아 놓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제 이 산을 넘어가면 카미노의 막바지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벌써 아쉬워지면서 앞으로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카미노 길 중 가장 높다는 푼토봉(Punto Alto)을 지나가는 길, 주변은 온통 낮은 나무와 들풀로 덮여 있는 산뿐입니다. 얼마를 가니 산 밑에 예쁜 동네가 보이네요. 아세보(Acebo)란 마을이에요. 앗, 지붕색깔이 달라졌어요! 여태까지는 거의 빨간색이었는데 이곳은 우리나라 기와색 같아요. 지역에 따라 지붕색깔이 변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마을이 예쁘고 독특합니다.

철십자가 '쿠르스 데 페로(La Curz de Ferro)'. 순례자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순례자들이 매달아 놓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하우메와 비센테(스페인 사람)가 몇 군데 바르(bar)에 들어갔다 오더니 여긴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조금만 더 걷자고 합니다. 아, 난 쉬고 싶은데 할 수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다음 마을에 가서 바르에 들어가 신발도 벗고 수다도 떨며 푹 쉬었습니다. 이젠 순례의 막바지, 친해진 사람들도 많아져서 제가 한국에서 준비해온 태극 배지를 나눠 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태극 배지를 하나씩 나눠 줬더니 다들 너무 좋아합니다. 자기들 가방에 달고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하더라고요.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카미노 길 중 가장 높다는 푼토봉(Punto Alto)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는데, 내려가는 길은 너무 힘이 들었어요. 길은 완전히 돌멩이에다가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먼지는 심하게 날리고 너무 힘들게 몰리나세카(Molinaseca)까지 왔어요. 이곳도 참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이곳에서 묵고 싶었어요. 아니 쉬었다라도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행이 폰페라다(Ponferrada)까지 쉬지도 않고 간다네요. 으흐흑. 그냥 뒤처져서 걸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니나(폴란드 사람)가 같이 가자고 독려를 합니다. '그래~, 의리가 있지!' 하는 수 없이 또 따라나섰습니다. 나도 걸음이 빠른 편인데 폰페라다 알베르게에 방이 없을까 봐 그런지 다들 어찌나 빨리 걷는지 따라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룹으로 다니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네요. 스페인 친구들이랑 다니다 보니 음식도 알아서 시켜주고 재미도 있고 지루하지 않았어요. 반면에 용변문제도 그렇고,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사색하기가 힘이 들어요.

푼토봉을 지나는 순례자들.

한복에 반한 프랑스 친구

아무튼, 뒤도 돌아볼 틈도 없이 가서 정오에 도착했어요. 하지만, 아직 알베르게 문 열기는 한 시간이 남았네요. 배낭으로 줄을 세워 놓고 앉아 맥주도 한잔하며 숨을 돌렸지요. 알베르게에 등록을 하고 안내해 준 방으로 가니 네 명이 자는 방이에요. 프랑스 여인 둘이 먼저 들어 있었고 나와 지원이가 같은 방이 되었습니다.

씻고 나오니 스웨덴 사람 샤롯데와 카리나, 그리고 이탈리아 삼인방과 몇 명은 오다가 수영을 하고 왔다며 신나서 알베르게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애고, 부러워라~! 천천히 왔어도 알베르게 잡는 것은 무리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이곳은 마당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놨어요. 아쉽지만 이곳에 발을 담그니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시더라고요.

프랭크 부자, 이탈리아 삼인방, 스웨덴 친구들 등 한번씩 마주치던 사람들과 모두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어요.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우와, 여태 먹어본 순례자 메뉴 중 정말 최고였어요. 10유로밖에 안 하는데 정말 전에 것과 비교가 되더라고요. 와인은 무료, 디저트도 커피와 푸딩에 폴란드 친구들이 원하는 보드카까지 화려했지요. 하지만,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 너무 아쉬웠어요.

식사 후 슈퍼에 가서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발 담그는 곳에서 또 발 담그고 놀다가 미사에 갔습니다. 아마 니나가 미사 때문에 저녁을 일찍 먹자고 했나 봐요.

폰페라다(Ponferrada) 마을 풍경.

미사에는 많은 순례자가 참석을 했어요. '주님의 기도(주기도문)'하는 시간에 순례자들에게 자기 나라말로 기도하게 하는 관례가 있나 봐요. 세 명에게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저에게도 한국말로 기도하는 영광이 주어졌어요. 정성을 다해 또박또박 한국말로 기도를 하는데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같은 방의 프랑스 여인 둘이 옆에 앉아 있다가 엄지를 치켜세워줍니다.

기분 좋게 미사를 마치고 혼자서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이곳은 해발이 낮아서인지 근래 들어 가장 덥지만 알베르게에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도시가 좀 커서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방에 들어오니 프랑스 여인 둘이 내 한복형 원피스가 독특하다고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이때를 놓칠 수 없어 인터넷을 켜고 우리나라 한복을 보여 주었더니 아름답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태극 배지를 하나씩 주며 고맙다고 했지요.

이 여인들은 오늘이 순례길 첫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루페와 티헬즈랑 통성명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몸은 피곤한데 더워서 잠이 잘 올까요?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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