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맘대로 여행] (89) 전북 완주 산속여우빛축제

어스름 해가 저물면 가을은 깊어진다. 공기는 더 청량해지고 풀벌레 우는 소리는 더욱 선명하다. 밤이 조금 더 길어졌다. 짙어가는 가을밤을 그냥 보내기에 아쉬운 요즘이다.

전국 곳곳에서 불빛잔치가 열리고 있다. 경북 청도 '별빛동화마을 빛축제', 경기도 포천 '불빛동화축제', 강원도 춘천 '호수별 빛나라' 축제가 진행 중이다. 충남 태안에서도 '빛축제'가 한창이고 대구 이월드에서도 '별빛축제'가 가을밤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 가운데 소설 <어린 왕자>를 테마로 한 전북 완주 '산속여우빛축제'로, 늦은 오후 여행을 떠났다.

완주(完州)라는 지역명은 자연과 사람이 더없이 완전한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봉실산을 밝힌 불빛축제가 완주힐조타운(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로 235-38)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익산IC에서는 약 12분 거리이고 완주IC에서는 23분 정도 소요된다.

전북 완주 '산속여우빛축제' 장미정원.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특별한 존재가 될 거야. 넌 나한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년이 되는 거고, 나 또한 너한테 세상에 둘도 없는 여우가 되는 거야."

'특별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담았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우빛 축제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어린 왕자> 테마공원은 아니다. 그저 <어린 왕자>의 인상 깊었던 문장을 담은 문구를 무심히 설치해 놓았다.

왕자가 장미, 여우 등과 나누었던 대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상상을 자극한다.

어둠이 깔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같은 하늘이 교차한다. 푸른빛과 하늘빛이 오묘하게 뒤섞일 때쯤, 이곳 동산에는 하나 둘 전등이 깨어난다.

매표소(평일 4000원, 주말 5000원이며 4세 이상 초등학생은 1000원 할인된다)를 지나 주차를 하고 나서 완만한 경사길을 오르면 불빛 세상에 도착한다.

허브와 꽃들이 가득한 달빛정원과 나무를 휘감은 불빛이 강렬한 바람정원, 어린왕자 장미정원 등 다양한 공간에서 불빛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형형색색 어둠을 밝힌다.

허브와 각종 꽃이 다양한 달빛정원.

특히 조화로 만들어 놓은 장미가 촘촘히 박힌 정원은 인상적이다. 전선을 연결해 꽃봉오리에 불빛이 들어오는 장미정원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점점 빛을 발한다.

언덕에 올라 빛 세상을 내려다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평화롭다. 바람은 적당히 정신을 깨우고 알록달록 빛들은 마음을 데운다.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어디를 가건 그곳에서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달렸다. "소중한 건 네가 장미꽃을 길들이며 살아온 시간이야."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소중한 꽃이 지구에서 보니 수천 송이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고 실망하고 있었던 찰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건넨 말이다.

산속여우빛축제는 1년 내내 운영하며, 여름철(5~10월) 점등은 오후 6시에 하고 11시(입장 마감은 10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겨울철(11~4월)에는 점등이 1시간 빨라져 오후 5시부터 11시(입장 마감은 10시30분)까지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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