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식당보다 구내식당, 저렴한 밥도 "각자 내자"…법률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부패 근절 의지 다지기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28일 시행됐다. 법 시행 초기인 데다 조항에 애매한 부분이 많아 자칫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공직사회는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식당은 한산, 구내식당은 '인기' = 관공서 인근 식당은 대체로 한산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말미암아 손님이 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이날 창원 한 한정식집 관계자는 "점심에 손님 한 테이블 받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김영란법 기준에 맞게 메뉴 가격을 내렸다. 소문이 나면 좀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일찍 가게 문을 닫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시청과 농협 등 금융기관이 몰려있는 거제의 한 일식집도 평소 예약 손님 받기에도 벅찼던 모습과 달리 정오가 다 되도록 손님이 들지 않았다. 식당 주인은 "평소 보이던 건설업자나 관공서 직원이 며칠 전부터 발길을 뚝 끊고 있다"고 말했다.

통영 한 일식집 관계자는 "콜레라 때문에 장사가 안되더니 김영란법 시행으로 또 손님이 없다. 조만간 일반 식당으로 업종 변경도 고려 중"이라고 걱정했다.

28일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한 일식집에 김영란 메뉴가 등장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각자 계산을 하려는 달라진 모습도 보였다. 창원에서 한식당을 하는 이주현(가명) 씨는 "점심 메뉴는 가격대가 1만 원 안팎으로 비싼 편이 아니지만 법 시행 첫날이라 그런지 계산대 앞에서 더치페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손님들이 더러 있더라"고 전했다.

한산한 식당과 달리 관공서 구내식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몰렸다. 평소 오전 11시 40분이면 이용자들이 하나둘 식당 입구에 몰려들던 경남도청 구내식당에는 이날은 평소보다 제법 긴 줄이 형성됐다. 경남도에 따르면 이날 점심 이용자는 모두 815명이었다. 가장 최근 수요일(8월 31일) 727명과 비교해 90여 명 늘었다. 수요일은 다른 평일과 비교해 이용자가 적은 편인데도, 전날 화요일(9월 27일) 776명, 8월 평균 804명과 비교해도 일정 부분 늘었다.

도 인사과 후생담당 관계자는 "그날그날 변수가 있어 항상 50인분 정도 예비 음식을 더 준비한다. 오늘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면서 "그래도 수치로 봤을 때 평소보다 이용자가 늘어난 것은 맞다. 앞으로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거제시청 구내식당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거제시 김모 계장은 "평소에도 구내식당을 즐겨 찾지만 오늘은 유난히 신경쓰여 친구와 점심약속도 취소하고 구내식당을 찾았다"고 말했다.

◇몸 사리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깨끗한 사회 기대도 = '김영란법' 시행 첫날 법률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은 법률 해석을 놓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날 경남도청 감사관실 콜센터에는 김영란법 시행과 맞물려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시행 전 한두 건 문의가 들어온 데 반해 이날은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문의 전화는 도청 직원이나 시·군 직원 등 공직자뿐만 아니라 일반 민원인 것도 섞여 있었다. 도 감사관실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고요 속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특히 "시행 초기 적발되는 사례가 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경남도청 직원들은 서약서를 제출하는 등 준수 의지를 다졌다. 또 도청으로 걸려 오는 전화 통화연결음(컬러링)에 "도청 공무원은 부정청탁을 거절하고 청탁금지법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담아 경각심을 높였다.

경남도교육청도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오는 연말까지 도교육청은 오찬을 겸한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 일정도 아예 잡지 않기로 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일단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브리핑이나 교육감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별도의 정책간담회는 잡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 언론인들은 법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인터넷신문사에서 근무하는 기자 김모(36) 씨는 "대한민국에서 기자가 특권이나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권력집단의 비호나 유착이 있어 가능했다"며 "김영란법은 권력집단과 유착해 특혜를 누리는 특수 지식인 집단으로 성장한 언론의 과거를 바로잡고 현재의 변질된 관행을 교정하는 일종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한 언론사 2년 차 기자 조모(33) 씨도 "취재 과정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대접을 해주려는 취재원이 많았는데, 앞으로 이런 부담이 줄어들어 더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시행 이후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탄력성'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김 씨는 "법만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껏 만들어놓은 법률이 현실과 유리되지 않도록 입법 후 예기치 못했던 문제점들을 꼼꼼히 살피는 융통성도 필요하다"며 "입법만능주의는 법 아래 국민의 행동·문화·사고를 복속시킨다는 측면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부 자치행정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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