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26) 정체 모를 전설 속 물고기 윤량어·윤랑어 실체는?

◇'눈이 없다'는 윤량어·윤랑어, 알 수 없는 그 실체

담정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이름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물고기인지 모르는 것들이 있다. 아니면 물고기 이름과 실재의 물고기가 다른 경우도 많다. 윤량어(閏良魚)가 그렇다. 담정은 이렇게 적었다.

"윤량어는 맹어(盲魚) 즉 장님고기이다. 생긴 것은 은어(銀魚)와 비슷한데 눈이 없다. 맹독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 물고기를 먹으면 조갈증이 생겨 발광하게 된다. 은어는 목어(木魚)이다."

일반적으로 목어는 도루묵을 말한다. 도루묵은 한자로 '목어', '은어', '환목어(還木魚)', '도로목어(都路木魚)'라고 하고, '돌묵어' 또는 '돌목어', '도루무기'라고도 부른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환목어(還木魚) 즉 '도루묵'이라고 한 이야기가 나온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등의 색 때문에 목어라 불리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매우 어려운 피난살이에 유성룡이 구해온 생선을 먹고 매우 맛있어 그 생선의 이름을 묻자 목어라고 하였다. 이에 선조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 먹어 본다며 생선의 이름을 배의 빛을 따 은어로 바꾸어 부르도록 명했다. 임진란이 끝나고서 선조가 도성으로 돌아와 피난 때에 먹어본 은어의 맛을 잊지 못하고 은어를 다시 먹어본 후 옛날보다 너무 맛이 없음에 실망하여 '도로 목어(木魚)'로 부르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하며 이것이 '목어>은어>도로목어>도로목>도루묵'으로 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고기나 반인반어가 된 여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여성과 물을 동일체로 보고 있다. 즉, 물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 동백섬 인어여인상. /박태성

하지만, 김려의 윤랑어는 도루묵이 아니다. 김려는 이 물고기의 눈이 너무 작고 물고기 몸에 눈은 게와 같다고 하였다. 또 이 물고기가 은어와 비슷하다고 했다. 은어와 같은 몸에 게와 같은 눈의 물고기란 말인데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또 <우해이어보>에는 도루묵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이는 도알 혹은 도란(都卵)이라는 물고기를 다른 항에서 소개하고 있으므로 윤랑어가 도루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부모가 수절할 뜻 꺾으려 하자 스스로 두 눈 멀게 하고

<우해이어보>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윤랑어(尹娘魚)라고 한다. 옛이야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윤랑(尹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편이 죽어 수절을 하였다. 부모가 수절할 뜻을 꺾으려 하자 윤랑은 수은(水銀)을 태워 눈에 쐬어 두 눈이 모두 멀게 되었다. 그래도 부모가 더 억지로 시집보내려고 하자 윤랑은 바닷가로 가서 빠져 죽었는데 그녀가 변하여 물고기가 되었다."

김려는 이러한 윤랑 전설을 허탄(거짓되고 미덥지 않음)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이학규가 쓴 <산유화가>에 등장하는 선산의 향랑 전설도 이와 비슷하다.

"상형곡의 임칠봉이란 사람의 처였던 향낭(香娘)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외숙으로부터 개가를 강요당하자 지주비(砥柱碑) 아래서 치마를 풀어 초녀(樵女)에게 주고 산유화곡을 불러 가르쳐 주고 나서 강물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그 노래는 '하늘은 높고 높고 / 땅은 넓디 넓은데 / 이 한 몸 둘 데 없네 / 차라리 물속에 잠겨 / 고기뱃속에 묻힐거나'."

이처럼 물에 몸을 던져 절의를 지킨 여인이 물고기가 되었다는 전설은 조선시대 영남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유화가는 메나리라고도 한다. 메나리는 일종의 아리랑과 같이 그 가락이 구성지고 내용에는 삶의 애환과 애절한 슬픔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산유화가 혹은 메나리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많은 시인 묵객들에 의해 시로 지어져 오늘에 전한다. 이학규의 <영남악부>, 신유한의 <청천집>, 윤정기의 <동환록>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제목은 '산유화', '산유화가', '산유화곡', '산유화여가', '향낭요' 등이다. 작가로는 이덕무, 이안중, 이노원, 이유원, 이우신, 김창협 등이 있다. 그중 이학규의 시를 보자.

'산유화 강 위의 언덕에 있으니 / 저주비석 아래의 물가라네 / 근심 많은 나무꾼 처녀는 / 긴 상처 탄식하며 누구를 향해 말하나 / 친정에 돌아와 숙부를 보니 / 아, 마음은 몰라주고 가요만 하네. / 남자는 아내를 쫓아낼 수 있지만 / 여자는 지아비를 둔 채로 재혼할 수 없다네 / 말없이 눈물 흘리며 문을 나서니 / 봄날에 상한 마음 앞 포구로 향해가네 / 비탈진 물굽이에 우두커니 섰다가 / 가볍게 물에 몸 날리니 절구공이 날리듯 하였네. / 강 가운데 노래하는 여인이 되니 / 일렁이는 물결 타고 그대를 생각하네. / 분홍 활옷 날리며 좋은 재물 띠우나니 / 어여쁜 그대는 구슬피 어느 곳에 있느뇨. / 원앙새도 짝이 되지 못하고 / 향긋한 강리 풀도 먹을 수 없구려. / 그대의 영혼 서린 낙동강 물가가 / 산유화가 돌아온 곳이라네.'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여인의 영혼이 꽃으로 변하는 설화나 전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심청이가 연꽃으로, 임을 기다리던 여인이 백일홍으로, 향랑이 산유화로 변하는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다.

◇조선 여인들이 갈망한 '자유로운 삶'의 상징

그러나 윤랑과 같이 절의를 지키다 죽은 여인이 물고기가 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서양 설화에 등장하는 인어(여인), 농부를 사랑하다 용왕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중국의 어녀(魚女) 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주몽설화에서 유화부인이 강물의 신 하백의 딸인 것도 물고기와 연관된다.

반면 물고기가 사람처럼 형상화된 것이 많다. 개와 고양이 설화에서 용왕의 딸(잉어)이 구슬을 가져다주는 이야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인어이야기 등이나 로렐라이 전설과 같이 반인반어 전설, 여수 거문도의 인어여인, 해운대 동백섬의 인어여인, 남이섬의 인어공주상 등 수많은 인어공주상이 설치된 것은 여인과 바다를 동질적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전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여성을 상징하는 바다, 대지, 강물과 같은 의미가 있는 존재인 물고기로 여인을 재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윤랑어와 같은 물고기는 여성과 동일체인 바다, 혹은 물속에서 사회적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세계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결국 윤랑어는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난 윤랑의 모습이며 조선 후기 여인들이 갈망하는 자유로운 삶의 상징이기도 하다.

김려가 <우산잡곡>에서 노래한 내용에도 그러한 부분이 투영되어 있다.

'복사꽃 다 진 뒤 동화(棟花) 처음 필 때 / 어부들 배를 손질하고 여름조업 나가네 / 어린계집 옷깃잡고 간곡히 하는 부탁 / 이번에는 윤랑어(尹娘魚) 절대 잡지 마세요.'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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