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과 가까운 양산, 지진 불안 가중…시민들 스스로 '대비책 마련'

지진(여진)이 계속되면서 시민 불안이 높다. 특히 경남 양산 주민들은 더 그렇다. 지난 12일부터 발생한 '경주 지진'이 양산단층대와 관련이 있고, 핵발전소 10기가 모여 있는 고리원전에서 20~30km에 양산이 있기 때문이다.

규모 5.8의 지진이 났던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400회 안팎의 여진이 났다. 기상청은 앞으로 수주에서 수개월간 여진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기상청은 인터넷 등에서 확산되고 있는 '24일 규모 6.6, 29일 6.8 지진 발생설'의 신빙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시민 불안은 계속되고 있는 것. 지난 12일 저녁 양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진을 감지하고 불안에 떨었다.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운동장과 공원에 모여들기도 했다. 또 주민들은 집에 있는 물품이 흔들거리고, 화분이 깨지는 상황을 경험했다.

최근 지진(여진) 여파로 시민들의 생활이 바뀔 정도다. 양산 주민들은 지진뿐만 아니라 원전 사고에 대한 걱정까지 하고 있다. 고리원전과 가깝다보니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생존가방' 꾸리기 ... 대피 때 익숙하지 않아

이른바 '생존가방'을 꾸려놓은 집들이 많다. 생존가방에는 주로 휴대전화 충전기와 후레쉬, 건전지, 양말, 장갑, 마스크, 가벼운 모포, 칫솔, 치약, 헬멧 등이 들어가 있다. 또 햇반과 라면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넣어놓은 집도 있다.

생존가방은 아파트 문 앞 신발장 옆에 대개 놓아둔다. 김형숙(42)씨는 "지진이 나거나 원전이 터지면 현금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에 얼마의 돈도 찾아 가방에 넣어 두었다"며 "지난 12일 지진 발생 뒤 인터넷에 보니까 생존가방을 꾸려 놓아야 한다고 해서 기본 물품을 넣어 놓았다"고 말했다.

주명자(43)씨는 "인터넷에 보니 생존가방을 꾸려 놓아야 한다고 해서 당장에 마련해 놓았다. 인터넷을 수시로 보고 더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살펴보고 보완하기도 한다"며 "막상 일이 터지면 돈을 찾을 수 없어 현금도 마련해 놓았다. 가족들 사진을 담은 유에스비도 챙겨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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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지진(여진) 발생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남 양산 주민들은 집에 '생존가방'을 꾸려놓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정례(36)씨는 "가방에는 초코파이와 휴지, 물티슈도 넣어 놓았다. 챙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다. 하루 정도 바깥에서 지낼 때 필요한 물품 정도로 챙겨놓았다"고 말했다.

생존가방을 꾸려 놓았지만 익숙하지가 않아 집에 두고 나오기도 한다. 주명자씨는 "지난 12일 지진 발생 뒤 가방을 꾸려놓았는데, 19일 여진 때도 아파트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지만 정작 가방을 챙겨 나오지 못했다"며 "일본사람들처럼 평소에 지진 대피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패물을 집에 두지 않고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김형숙씨는 "집에 있는 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아이 돌반지와 은행통장을 가방에 넣어둔 집도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22층에 사는 진은정(40)씨는 "저녁에 보면 공원에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주민 스스로 가상 시나리오 짜"

양산 사람들은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다. 남편과 고등학생 아들과 사는 김향숙씨는 "지진도 걱정이지만 원전사고도 마찬가지다"며 "가족들은 밥 먹을 때나 모여 앉을 때마다 지진과 원전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피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파트가 고리원전과 더 가깝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남편의 직장은 2km 정도 더 멀다"며 "그래서 남편한테는 원전사고가 나면 집에 있는 저를 데리러 오지 말고 아이부터 챙겨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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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저녁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경남 양산 한 아파트 화분이 깨져 있었다. / 오마이뉴스

주민 스스로 가상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요즘 주민들은 지진이 나거나 원전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각자 가상의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며 "정부나 도청, 시청에서 알려주지 않으니까 주민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더 불안해 한다"

아이들도 불안하다. 초등학교 3학년과 7살, 5살의 세 딸을 키우는 주명자씨는 "지난 12일 지진이 난 뒤부터 아이들이 불안해 한다"며 "가방을 싸니까 아이들이 더 불안했던 것 같다. 가방 싸는 걸 본 아이가 울면서 '이제 죽는 거야'라고 하더라. 그래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달래 주었다"고 말했다.

주씨는 "그래서 지난 19일 다시 여진이 왔을 때 아이가 느끼지 못했던 것 같고, 남편과 저는 느꼈는데 아이가 불안해 할까봐 말을 못하고 눈짓으로 주고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 주부는 "양산은 지진에다 원전으로 더 불안하다. 요즘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최후의 만찬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하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눈물이 울컥 날 때도 있다. 침착하려고 하는데 계속 불안하다"고 말했다.

권정례씨는 "아이들도 지진이 나자 많이 놀랐다. 엄마가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가 더 불안한 것 같더라"며 "그래서 아이들한테 계속 안심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진은정씨는 "지난 12일 이후 아이가 사흘 정도 말을 잘 하지 않았고 잘 먹지도 않았다. 어느 집 아이는 토했다고 하더라"며 "아이들은 지진이 났다는 소리만 들으면 울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안해서 잠을 못자 ... 정확한 대피요령은?"

주민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항상 지진 불안에 휩싸여 있다. 김형숙씨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또 지진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고, 깊이 잠을 못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운동화가 신발장 안에 있었는데 지난 12일부터 내놓게 되었고, 외출복을 미리 챙겨둔다"며 "이전에는 안경을 아무 데나 벗어 놓았는데 요즘은 항상 머리맡에 두게 되고, 밤에 잠잘 때는 이전에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두었는데 요즘은 최대한 소리를 키워 놓는다. 누군가 전화를 했을 때 듣지 못하나 싶어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진은정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는지 고민이 많이 되고, 집에서 빨래를 개거나 하다가도 유치원에 가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있다가 남편이 퇴근해 오면 어쩔 수 없이 집에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불안해 한다. 큰 차량이 지나가면 건물이 흔들릴 때가 있는데 이전 같으면 예사롭게 넘겼지만 요즘은 다 놀랜다"며 "어제(21일)도 낮에 건물 1층 카페에 있다가 지진이 났다는 말에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볼멘소리가 높다. 주명자씨는 "엊그제는 긴급재난문자는 오는데, 정작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안내는 부족하다"며 "재난방송의 지시에 따르라고 하는데, 정작 방송에서는 중계방송만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안내가 없다보니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권정례씨는 "불안이 계속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며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해달라. 국민들이 정부를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보니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스스로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현주(양산)씨는 "딸이 학교를 다니는데, 건물이 어느 정도 흔들렸을 때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아 헷갈린다. 기준이 없는 것 같다"며 "지난 12일 지진이 났을 때 아이가 계속 징징대고 울었다. 대피 등에 대한 정확한 매뉴얼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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