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라고만 하지 말자 경험·두려움 공유해야 정말로 벗어날 수 있다

아파트 12층이어서 그런지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는, 마치 커다란 괴물이 아파트를 옆으로 잡고 흔드는 느낌이었다. 같이 흔들리는 몸을 중심 잡고 있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등이 뻐근했고 그와 동시에 등 뒤로 소름이 확 끼쳤다. 실제로는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 체감 상으로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진앙이 있는 경주도 아닌 거제에서도 지진의 충격은 엄청났다. 서울 갔다 집으로 오고 있던 남편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고 지진 소식을 찾아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가 한 시간이 채 안 지나서 두 번째 지진이 났다. 책장에 기대놨던 보드판이 떨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거의 울부짖으며 얘기했다. "어떡해? 무서워…, 나 어떡해야 해?"

지진으로 기와지붕과 담장이 무너지는 등의 피해를 입은 경북 경주시 사정동 주택가./연합뉴스

지진이 한 번 일어났을 때도 많이 놀랐지만 지진이 연속으로 일어나니까 이건 질이 다른 충격과 공포였다. 언제 지진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휴대전화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한숨 돌린 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남편에게 무사히 빠져나왔음을 알렸다.

근처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배회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휴대전화 배터리도 20%밖에 안 남아 있다. 밤이라 조금 춥기도 하다. 좀 더 신중하게 챙겨서 나올 걸 후회가 된다. 공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 땅이 울렁거리는 느낌이다. 밖에서 한 시간 넘게 보내다 사람들도 서서히 줄어들고 때마침 남편도 돌아와서 남편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지진의 여파는 지금도 남아 있다. 언제 다시 큰 지진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이런 두려움은 일종의 노이로제가 됐다. 지진이 나면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서도 옷을 갖춰 입게 되고, 뛰쳐나가는 동선을 몇 번씩 그려보기도 한다.

19일 밤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날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상청에서 관계자가 지진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니까 신발은 될 수 있는 한 편한 걸 신고, 옷은 밤 되면 쌀쌀할 수 있으니까 따뜻한 옷을 챙겨야 하고, 계속 인터넷으로 상황을 봐야 하니까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도 반드시 챙겨야 하고 머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담요도 챙기고 멀리 이동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자동차 키도 챙기고 등등.

가끔 집이 살짝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다. 이게 여진인가 내가 어지러운 건가 느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창에 여진을 검색해 보면 실시간으로 "방금 경주 여진 느꼈어요", "방금 대구 여진 맞죠?" 이런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하지만, 실시간 댓글에는 "이제 좀 그만 해요"라거나 "여진 느낀다는 분들 일상생활 가능해요?" 같은 비꼬는 글들도 올라온다. 여진에 대해서도 실시간 발생현황은 확인할 방법도 없고 몇 시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기상청 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SNS나 뉴스 댓글에 실시간 상황을 남겨서 자기 경험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나 혼자만의 노이로제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이게 서울에서 일어났어도 이렇게 조용했을까. 지진이 만약 서울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그리고 여진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두 차례의 지진 자체만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다. 내가 사는 별일 없는 하루가 정말 한순간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계속 불안하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한 번의 강렬했던 경험이 준 충격, 놀람, 공포, 두려움은 계속 말해져야 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지진으로 말미암은 노이로제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다음에 또 지진이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정희(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통 gnfeelto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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