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신뢰 잃고 거꾸로 가는 무능정부…세계 최고 밀집 원전·핵발전 의존정책

노트북을 열어 어제 못다 본 영화를 이어 보려는데, 갑자기 거실 바닥이 출렁인다.

'또, 지진이다.'

황급히 영화창을 닫고 포털사이트에 접속했지만 새로운 지진 소식은 없었다. 뉴스보다는 소셜네트워크가 몇 발이나 빨랐다. 텔레그램 창에 한 친구가 '지진…'이라고 짧고 강한 단어 하나를 올린다. 곧이어 페이스북에 얼굴친구들이 연달아 자신들이 느낀 지진 속보를 띄웠다. 나도 한 줄 지진 소식을 보탰다. 배드민턴 동호회 밴드 대화창에도 지진에 관한 대화들이 오간다.

지진 발생 20분 뒤 8시 54분에 경남도민일보에 속보가 떴다. "경주시 남남서쪽 11km서 규모 4.5 여진 발생". 뉴스에 따르면 기상청은 이번 지진을 지난 12일 발생한 경주 5.8 지진의 여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상청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하기야 강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13일 아침 기상청은 이미 "경주지진 여진 계속되나 사실상 종료"라고 발표하지 않았던가. 밤 10시경 다음포털 속보로 올라온 연합뉴스 기사에는 예측 불가능한 지진에 대한 공포와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을 담은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특히 잇따른 지진이 여진이 아니라 더 큰 지진을 예고하는 전진이 아니냐는 우려와 진앙 바로 옆에 있는 월성과 고리 원전을 폐쇄하라는 요구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다.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난 큰 사건 나면 JTBC부터 본다. 정부 브리핑 이딴거 안 믿은 지 오래전이다. 그만큼 이 나라 정부의 말은 신뢰 못한다. 하도 구라질을 해대니 말이다. 입법·사법·행정·공기업·지자체 어느 한 군데도 믿음이 안 간다. 뭔 말을 해도 구라질로 들린다. 이 나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서글프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足食), 군사(足兵)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之)이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군사를 버려라(去兵)." "만약 두 가지 중의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제를 버려라(去食).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동양고전을 가르친 신영복 선생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전 공자가 일갈한 정치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거꾸로 행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유족이 납득할 때까지 조사하고, 책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겠다 약속했지만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 4대 강에 설치한 보로 말미암아 녹조가 끼고 강물이 썩어가는데도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은 관련성 없다고 강변한다. 국정원이 세금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탈북자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일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그 와중에 북한 핵을 이유로 사드 배치를 성급히 결정해 경제를 망가뜨리고, 어려워진 경제를 빌미로 노동자를 쉽게 자르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공자나 신영복 선생의 말대로 신뢰가 곧 정치라면, 지금 대한민국엔 정치가 실종된 상태나 다름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에 그쳤다.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권인 26위다. 특히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27%로 뒤에서 4등을 기록했다. 모르긴 해도 지금은 신뢰도가 더 추락했을 것이다.

허술한 지반 위에 지은 건물이 작은 지진에도 쉽게 허물어지듯 신뢰를 잃은 권력은 작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진다. 많은 전문가는 지금 한국의 경제가 일본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또한 보수정권이 장기집권하는 일본을 답습하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핵발전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안전을 장담하는 불안한 모습까지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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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댓글에서 누가 말했듯이 진짜 무서운 것은 지진이 아니다. 그 위에 세계 최고 밀도로 지어진 20여 기 핵발전소가 더 무섭고, 국민 신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능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이 그보다 몇십 배는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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