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5편 아스트로가∼폰세바돈 27.2㎞

새벽에 출발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출발을 했어요. 이 구간에서 얼마 전 실종사건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에요. 저를 포함해 한국인 세 명, 스페인인 친구들 여섯 명, 스웨덴의 샤롯데, 카리나, 폴란드 니나까지 한 무리가 출발합니다. 빌바오에서 대학에 다닌다는 몰카와 알베르토가 있으니 더욱 든든하네요.

차로는 어제 마사지와 약으론 효과가 없었나 봐요. 병원에 갔다가 출발하기로 하고 우리는 하우메가 들려주는 카미노송,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함께 부르며 먼저 출발을 했어요.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만 걸으려고 하다가 다들 폰세바돈(Foncebadon)까지 간다고 해서 저도 그러려고요.

찻길을 따라 걷는데 대형버스가 한 대 서는 거예요. 그러더니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서 걷기 시작하는 겁니다. 속으로 '아이고 큰일 났구나' 늦으면 오늘 숙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삐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구~! 이들 때문에 카미노길이 복잡해지네요.

라바날 델 카미노를 지나자 계속 오르막입니다. 거기다 돌멩이가 너무 많아서 발은 아픈데 그래도 생각보다 걸을만하네요. 그리고 산으로 올라갈수록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고단함이 덜한 것 같기도 해요. 주선이가 힘들어해서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먼저 걷기 시작했습니다.

폰세바돈은 1400 고지에 있는 여태 묵은 마을 중 가장 작은 마을이에요. 누구는 손바닥만 하다고 하기도 하고 지리산의 노고단 같다고 표현도 하네요. 이곳은 찻길로도 올 수가 있는 모양인지 버스가 한 대 서서 아까 내려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 사람들은 오늘 하루만 걸으러 왔던 사람들이었어요.

새벽에 아스트로가를 출발해 라바날 델 카미노를 지나고 있다.
새벽에 아스트로가를 출발해 라바날 델 카미노를 지나고 있다.

이곳은 민가는 없고 알베르게와 바르(bar) 겸 작은 슈퍼만 있는 곳이에요. 작은 알베르게를 지나니 제가 가려는 알베르게가 나옵니다.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주선이를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왔는지 얼마 안 가니 오는 거예요. 역시 젊음이 좋긴 하네요. 알베르게 또한 묵었던 곳 중 가장 작은 곳이에요. 22명이 정원, 그래서 금방 차버리네요. 그래도 같이 걷던 스페인 멤버는 거의 이곳의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어요. 차로만 빼고요.

포세바돈까지 걷는 길.

이곳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입니다. 저녁과 아침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이 알베르게에는 미겔이라는 유쾌한 호스피탈레로(자원봉사자)가 한 분 있었는데 이분이 음식도 해 주고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미겔이 우리를 데리고 가 문을 열고 보여준 곳에는 정말 작은 성당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성당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습니다. 마을도 작고 알베르게도 작고 성당도 작지만 감동은 큰 마을이에요.

폴란드 친구 니나의 발에 물집이 생겨 힘들어합니다. 이 발로 내색 한 번 없이 걷다니 내가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서툰 솜씨지만 니나의 발을 치료해 주고 나니 니나가 멜론을 사 와서 감사의 표시를 하네요.

포세바돈까지 걷는 길.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 이야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있는데 프랭크가 지나갑니다. 프랭크도 이 동네에 묵었나 봐요. 그림을 그리려고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었지요. 저런 재능을 가진 게 참 부러웠어요.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네요. 미겔 아저씨가 파에야 등으로 스페인 집 밥을 차리셨는데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했는지 몇 개 아는 스페인어를 다 끄집어내고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면서 계속 칭찬을 해 주었어요.

식사 후 밖에 나가 쉬고 있는데 스페인 친구들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저 밑 알베르게에 차로가 와 있다고 함께 가자더군요. 얼른 가보았더니 차로는 나를 보자마자 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아스토르가의 병원에서 더는 걸으면 절대 안 된다는 진단이 나와서 일부러 우리를 보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고 온 거였어요. 여태 어떻게 걸어왔는데 몸이 아파 못 걷게 되다니, 그 슬픔이 고스란히 제게 전해져서 너무 맘이 아파 함께 울었답니다.

포세바돈까지 걷는 길.

차로는 여기서 자고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론센스 바에스부터 만나기 시작해 자주 만나며 한동안 의지하며 걸었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 마을의 유일한 바르 겸 가게로 가보았어요. 마침 예쁜 팔찌를 팔기에 하나 사고 한국에서 온 지원이에게 부탁해 메모도 하나 써서 차로가 묵는 알베르게로 다시 찾아갔죠. 한국에서 준비해 온 태극기 배지와 함께 전해 주었어요. 차로는 감동과 슬픔이 겹쳐 또 울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아침에 함께 걷던 샤롯데가 산밑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어요.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 함께 앉아 있는데 누가 저를 부릅니다. 걸으며 자주 만났던 러시아에서 온 부자인데 이곳에 묵는가 봐요. 아주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아들 이반이 종이에 싼 것을 선물이라며 주었습니다. 메모도 들어 있더군요. 몇 번을 만났어도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저를 만나면 주려고 준비를 했대요. 감동이었어요. 아버지 안드레이는 결혼 전에 부산에도 와본 적이 있다며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듯 보였습니다. 이 멀리 타국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반가워해 주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만감이 교차하는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차로는 나중에 다시 이곳에서부터 걸어 순례길을 완주했답니다.) /글·사진 박미희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쉬기도 하고 숙소에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친구가 됩니다.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쉬기도 하고 숙소에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친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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