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10) 그래 장사란, 간판 크게 단다고 되는 게 아니지

작년 이맘때 평생 처음으로 보름가량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했습니다. 체코와 슬라비아·오스트리아·헝가리 등 동유럽을 여행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하지만 당시 시리아 난민들의 대탈출로 방문한 몇몇 도시에서 목격한 참혹한 장면과 들려오는 소식들로 마음 편한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죠. 난민들의 유입을 차단한 상태였던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어서 여행객으로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했나요. 장사치인지라 그 동네 장사치는 어떻게 먹고사나 하는 것이 제 관심사였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일찍 열고 일찍 닫는 '영업시간'이었습니다. 국가별 수도여서 가장 인구가 많은 데다 관광·여행객이 몰리는 체코 부다페스트나 오스트리아 빈, 잘츠부르크 등의 중심 상점가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후 6~7시면 대부분 문을 닫더군요. 아마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저녁 시간은 자신을 위해 휴식하거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삼겠지요.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비교적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점포도 저녁 8시쯤이면 다 문을 닫았습니다. 밤늦도록 장사를 하는 업종은 딱 하나. 밥 먹고 술 마시는 곳뿐이더군요. 술집도 자정 넘어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젊은이들이 찾는 클럽 같은 곳은 모르겠고요. 아무튼 우리 동네처럼 새벽까지 술 마시고 놀 수 있는 곳은 없더군요.

오스트리아 빈의 중심가 밤 풍경. 왼쪽은 거의 상점가인데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두었다.

반면 영업 시작은 빠릅디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고정식 노점상' 비슷한 가게는 6시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꽃가게나 생필품을 파는 편의점, 심지어 서점이나 옷가게도 오전 7~8시면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 시각에 이용자들도 많더군요. 출근길에 꽃을 사거나 서점에서 책을 사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동네들의 생활문화가 우리와는 좀 다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문을 여는 점포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유리창을 닦는 모습입니다. 물을 떠다 놓고 정말 열심히, 뽀득뽀득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깨끗하게 닦더군요. 대부분 점포의 유리는 진열대가 잘 보이도록 커다랗고 시원하게 유리창을 만들어놓고, 날마다 관리에 열심이더군요.

상점가에 주차차량이 전혀 없는 점과 통행인에게 장애가 되는 상점 밖 진열대가 전혀 없다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정돈되고 자그마한 간판들도 오히려 보기 좋더군요. 아마 철저하게 통제하거나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장사를 하는 마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죠. 우리 동네를 돌아보면 "아이고! 정신없어!" 하는 얘기가 그냥 나올 정도니까요. 좁은 골목길까지 가게 입구마저 막은 차량은 물론 누가 더 크게 만드나 내기하듯 커지는 간판들로 건물을 아무리 예쁘게 지어도 소용없죠. 어차피 간판이 다 가려버릴 테니까요.

정말 크게 다른 점은 밤이 돼서야 알게 됐습니다. 해도 지기 전에 문을 닫았던 상점가가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도 여전히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이랑 상점가를 걷는 저도 어둡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주인도 점원도 자리를 비운 점포지만 스스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왜 그렇게 열심히들 유리창을 닦는지 이유를 다시 알게 됐습니다. 쇼윈도 너머 진열된 상품들이 잘 보이도록 환하게 불을 밝히고, 티끌도 없는 맑게 유리창을 닦아놓았던 것입니다. 밤은 깊어지지만 점포의 불빛 덕분에 거리는 여전히 환했습니다. 창가마다 상품이 잘 보이도록 진열대를 꾸미고, 매력적인 상품을 놓고, 거기다 밝은 조명을 비춰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죠. "내일 낮에 저를 사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가구점 같은 곳은 매장 전체를 밝게 켜놓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중심가 한 복합빌딩의 간판 모습. 유명브랜드들이 정돈된 개별 간판 속에 감금돼 있다. 덕분에 낮에 보면 멋 부린 건물의 모습도 온전히 드러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불을 켜놓는 것이 진짜 장사다 하는 생각이 듭디다. 밤거리를 걷다가 유혹당한 손님 한 명만 잡아서 상품 한 개만 팔아도 한 달 밤샘 전기요금은 거뜬히 감당하지 않겠습니까? 셈에 밝은 장사치라면 충분히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동네 장사치들은 이런 원리를 이미 눈치 챈 것이겠죠.

쇼핑을 하는 사람도 오히려 부담이 없을 것 같더군요. 호객행위도 없고, 친절이 지나쳐 상품 설명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일도 없어 늦은 밤 이곳저곳 훼방꾼 없이 여유롭게 들여다보고 상품을 '찜' 해뒀다가 낮에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아마 저는 지금까지 "전기요금을 아껴야지" 또는 "밤에 누가 우리 가게를 눈여겨볼까"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와서 내 목공소를 찬찬히 살펴보니 유럽에서 봤던 환경이 안되더군요. 게다가 점포를 개조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어차피 임대점포이니 제 마음대로 개조를 할 수 없어 그냥 두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 전 목공소도 이전했고, 전에보다 유리창도 많고 넓어져서 이런 요령을 적용해볼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놀고 있는' 창동 골목에서도 대비되는 모습을 봅니다. 창동예술촌 한 입주작가의 작업실 겸 점포 진열대는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습니다. 유리로 작품이나 상품을 만드는 공방인데, 밖에서 보면 오른편 선반에 작품을 올려두고 항상 불을 켜놓고 있습니다.

반면 최근 새 단장을 한 옷가게는 영업시간이 끝나면 불을 끄는 것은 물론이고 큰 쇼윈도를 블라인드를 내려 가려버립니다. 점포 입구를 겨냥한 CCTV도 달려 있어 방범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예쁜 옷가지를 진열해 놓고 가림막으로 가려버리니… ㅠ..ㅠ 이곳뿐 아니라 창동 거의 대다수 점포가 영업시간이 끝나면 불을 꺼버리기는 마찬가지죠. 밤새도록 불을 켜놓으라고 말을 걸어볼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참아버립니다. 오지랖이란 소리 듣게 될까 걱정하기 때문이죠. 거꾸로 잔소리로 듣고 되레 "너나 잘해라!" 하면 부끄러울 테니까요.

요사이 저는 점포 전등 3줄 가운데 1줄은 켜둔 채 퇴근합니다. 제대로 만들어진 전시품도 없지만 "여기는 목공소입니다. 관심 있거나 가구가 필요한 분은 연락주세요"라는 뜻으로. 청소도 않고 작업하던 상태 그대로니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홍보에는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인근 어르신들이 아침에 제게 얘기합디다. "어제 불 켜놓고 퇴근했데? 전기료 많이 나올 건데"라며 걱정해주십니다. 만날 켜놓으니 요즘에는 제 뜻을 대충 눈치 채신 것 같습니다. 머 이리 함 해보죠. 머. 제 목공소가 파리 날린다고 해서 누가 도와줄 것도 아니고, 누진제 걱정을 국가가 덜어줄 리도 만무하니까요. 다행히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 전기니 전기료를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밤에 불 켜진 창문 너머 만들고 있던 가구를 보고 찾아왔어요"하는 고객을 한 달에 한 분만 만날 수 있으면 만족입니다. /글·사진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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