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꽃잎따라 선조들의 정취 '물씬'


봄철 진해는 벚꽃으로 가득하다. 옛시조에도 나오지만, 70년대 <별들의 고향>으로 단번에 뜬 소설가 최인호식으로 말하자면, ‘난분분(亂紛紛) 난분분(亂紛紛)’ 흩날리는 꽃잎에 어질어질 어지럼증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진해에 벚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태종 때인 1407년 이미 웅천에 제포를 열고 왜관을 설치했으며 1510년 일어난 삼포왜란의 삼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포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7월 이순신 장군 휘하 수군이 왜적을 때려잡은 데가 바로 진해 안골포다. 이순신과 원균.이억기 등이 그 유명한 학익진을 펼쳤는데, 한산대첩과 함께 침략군의 주력을 깨뜨려 전세를 뒤집는 데 크게 이바지한 전투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다시 쳐들어와 왜성을 튼튼히 쌓아올리기도 했다. 왜적이 볼 때는 진해(당시는 웅천)를 차지하면 안민고개를 넘어 뭍을 쉽게 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해 바다의 절반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려 때는 몽골의 지배를 받은 탓에 정동행성의 지부가 설치되고 일본 원정군이 출범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봄철 한 때 벚꽃 우거지는 놀이터로만 여길 수는 없겠고, 옛적 왜와 교섭했던 항구이기도 하고 여몽연합군 일본 원정과 임진왜란에서 맞겨룬 역사의 현장이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좋은 봄날 벚꽃만 보고 돌아와서야 되겠는가. 제황산공원의 365계단이나 장복산 또는 해군사관학교에만 가지 말고, 해안도로를 따라 옛적 자취를 찾아가면 어떨까.
가장 가까운 바닷가가 행암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수치. 횟집과 경관 좋은 찻집이 즐비하다. 깨끗하지 못해 눈살 찌푸리는 일이 더러는 있지만 나름대로 즐길 만한 곳으로 이름나 있다. 다음으로 낚시꾼이 많이 찾는 명동이 있다. 소쿠리섬과 이어진 곰섬, 그리고 벗섬이 자그맣게 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금은 바람도 풍경도 따뜻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놀려면 명동 지나 삼포 가는 사이 아무데나 자리잡으면 좋다. 군데군데 갯바위나 갯벌이 펼쳐져 개흙이나 바위를 뒤집으며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낚싯대를 드리면 그대로 낚시터가 되는 장소도 곳곳에 있다.
돌아나와 안골포와 용원으로 간다. 여기도 아이들과 놀만한 데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깨끗함을 기대하면 안된다. 바다는 이미 망가졌다. 무슨 신항만 공사가 물길을 잘라 먹은 것이다.
안골포에서는 주민들이 굴을 까서 팔고 있다. 저쪽 부두로는 낚시꾼들이 계속 몰려든다.
조선 수군의 유일한 자취인 안골포 굴강(掘江)은 초라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다. 원형대로 남은 몇 안되는 굴강이라는데 보전 상태는 끔찍할 정도다. 마을 왼쪽 뒷산 안골왜성은 상태가 좋다. 규모는 작지만 볕도 바르고 소나무가 알맞게 자라서 좋다. 용원은 좁은 찻길에 차가 밀릴 정도로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 온다. 들머리에는 김해가야 김수로왕의 비(妃)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 나라에서 와 닿은 곳이라는 망산도가 있다. 썰물 때면 10m 정도 걸어서 들어가면 된다. 대부분 바위로 돼 있는데 마치 거북 등딱지처럼 갈라 터져 신기하다. 왼쪽 녹산공단 쪽으로 60~70m 떨어진 갯벌에는 허황옥이 타고온 돌배가 뒤집어져 남았다는 유주암(維舟岩) 두 무더기가 거무데데하게 떠 있다.



△가볼만한 곳-왜군이 쌓은 웅천왜성

안골포에서 서쪽으로 마주보이는 데가 웅천이다. 웅천은 진해가 진해로 되기 전에 웅천현청이 있던 자리다.
웅동만 또는 안골만이라고 하는 데를 가운데 두고 튀어나온 남산 꼭대기에 왜군들이 쌓은 왜성이 있고 그 뒤쪽으로 웅천 마을이 있다. 짐작하건대 남산을 방패삼아 현청 둘레에 읍성을 쌓았던 것인데, 왜군은 이 마을 들머리에다 5000평 크기나 되는 왜성을 쌓아 기전에 대비하는 제2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웅천읍지>에 따르면 봉우리 세 개를 깎아 없앤 뒤 산마루에 본성을 두고 능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외곽을 두 겹까지 둘렀으며 뭍에서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나성도 좌우로 길게 쌓았다. 이를 보면 노역에 동원됐을 조선 사람의 고생이 눈에 선하고, 왜군은 또 얼마나 모질게 마음먹고 재침했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남산은 높이가 183m밖에 안된다. 하지만 바다에 잇닿아 있어 오르려면 30분은 좋게 걸린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오르다가 갈래길에서 아무 쪽이나 골라잡아 올라도 왜성에 다다른다. 산마루에 서면 진해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한 눈에 모조리 제압이 되는 것이다. 읍성은 웅천초등학교 한쪽 담장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민가의 담을 이루기도 하고 텃밭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진해제일고등학교 쪽으로도 나 있었다는데 대부분 허물어져 버렸고 마을 북쪽은 국도를 내면서 다 망가졌다.
창원 출신 최윤덕 장군이 축성 작업을 총괄하던 세종 시절(1434년)에 처음 지었으며 행정 기능은 문종 때인 1452년부터 한 것으로 돼 있다.
어쨌거나, 조그만 마을 안팎으로 거닐면서 성벽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곳이다. 마을 노인들은 남새밭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일하고, 할머니 한 분은 교회를 다녀오는지 힘겹게 들고 가는 가방에 빨갛게 색을 입힌 책이 보인다.
북쪽 국도 귀퉁이에 서 있는 선정비 몇몇과 비각 두셋은 옛날 이곳이 현청 자리였음을 밝혀준다. 옛날 현청으로 썼을 학교 울타리 안에는 크게 자란 느티나무랑 소나무들이 있다. 떠날 즈음에는 지는 해 뒤로 깔고 동구 나무 배경 삼아 집안 식구들 사진을 찍으면 그만이겠다.


△찾아가는 길

지금은 군항제. 안민고개나 장복.마진터널 등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을 골라잡으면 시간이 엄청 걸린다. 진해 도심지로는 아예 들르지 말고 창원에서 안민터널로 들어가면 좀 낫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곧장 행암.수치로 달려보자. 두 번째 신호등에서 왼쪽으로 꺾어진 다음 부산으로 빠지는 국도 2호선을 타지 말고 곧바로 가면 된다.
풍호동 행암과 수치를 지나 계속 길 따라 가면 커다란 조선소가 나온다. 오른쪽 산으로 벚꽃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떠 있어 눈이 즐겁다.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명동이 나오고 여기서 바다 따라 삼포까지는 길이 나 있어 기분 좋게 갈 수 있다.
삼포에서 제덕까지 이어주는 해안도로 1.4km는 아직 개통되지 않았다. 따라서 웅천이나 사도.안골포.용원으로 가려면 돌아나와 국도 2호선을 타야 한다. 국도 2호선을 따라 가면서 표지판을 눈여겨 보면 이들 마을로는 쉽게 찾아들 수 있다.
하지만 안골포굴강.안골왜성.웅천읍성.웅천왜성.망산도 따위를 일러주는 표지판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대놓고 묻는 수밖에 없다.
가장 뚜렷한 보기로 안골왜성을 들 수 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올라야 하는데 마을 어디에도 화살표 하나 그려져 있지 않다. 어찌어찌 한참 헤매다가 찾은 왜성 꼭대기에만 덩그라니 안내판이 들앉아 있는 것이다.이처럼 해안도로를 타려면 자가용을 타는 수밖에 없다.
대신 웅천이나 안골포.용원을 찾아 거닐면서 즐기려면 시내버스 105번을 타면 된다. 웅천읍성과 왜성에 가려면 웅천초등학교에서 내려 위 아래로 가면 되고 안골왜성이나 안골포굴강을 눈에 담으려면 안골 들머리에서 내린 다음 마을회관으로 가 물어봐야 한다. 또 가야 전설이 서린 망산도나 유주암을 보고 싶으면 용원 종점에서 내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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