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경선의 바람, 문화의 바람

요즘 주말은 꽤나 재미가 있다. 신문의 정치면 기사도 열독할 기회가 잦아졌다.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덕분에 켜켜이 쌓여만 가던 정치불신도 상당 부분 해소된 것 같다. 여론조사만 했다 하면 4할을 웃돌던 부동층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음모론이니 색깔론이니 예전의 단골메뉴가 여전히 등장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정치 얘기를 나누며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
이처럼 경선이 흥행 대박을 터트리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유권자들이 뜻을 모으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판의 행사란 으레 ‘그들만의 잔치’였고, 그래서 유권자들도 정치라면 소 닭 보듯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선바람은 정치판의 당리당략, 조직력, 그리고 관행 따위의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면서 유권자가 정치에 직접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성공여부를 예단하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 정치사에 하나의 전기로 기록될 것 같다.
이번 경선과정이 준 교훈이란 바로 ‘참여의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노무현과 이인제의 치열한 접전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경선을 통해 일반 국민의 의사가 정치현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경선결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의 교훈’은 문화 분야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문화의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우리는 ‘문화정체성’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서의 정체성이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민족문화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생활문화도 포함된 개념이다.
하나의 예로 지난 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쌀 재고에 관한 논란은 본질적으로 문화정체성의 문제였다. 맥도널드를 비롯한 각종 외식업체들이 하나의 도시문화 코드를 형성하면서 식생활 문화를 바꿔놓았던 것이다. 이는 거대하게 산업화된 문화가 생활문화를 집어삼킨 형국에 다름 아니다.
산업화되고 획일화된 문화는 우리의 삶에 ‘문화적인 좌절’을 안겨다줄 수 있고, 이미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역문화 혹은 생활문화의 실종이다. 해서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에서도 노풍(盧風)과 같이 관행과 인습을 초월하는 바람이 불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바람이란 과정의 교훈에서 살펴봤듯이 참여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단순히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직접 창조하는 적극적인 태도만이 지역문화에 팽배해 있는 좌절감을 날려버리는 바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문화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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