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민 기자가 만난 농협CEO] (3) 산청군농협 박충기 조합장

바야흐로 6차 산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농협(수협) 역시 거센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치러진 '농축수협·산림조합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는 그 변화의 길에 작은 이정표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닥칠 것입니다. 그래서 일선 조합장들을 만나 농어촌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변화의 전조를 어떻게 체감하고, 대응하는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경남지역에는 140여 개의 '농·축협'이 있다. 기초자치단체별로 따져보면 많게는 15개에 이르는 곳도 있고, 평균적으로 시·군마다 5∼6개의 농축협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각 기초자치단체의 농지와 인구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는 셈이긴 한데, 실제 대출과 예금 등을 다루는 신용사업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인구가 많은 창원이나 진주 등 도시에 오히려 농·축협이 많은 측면도 있다.

그런데 산청군에는 단 하나의 '농협'밖에 없다. 이는 1992년 이루어진 통폐합에 따른 것이다. 농협 중앙회가 추진한 농협 통폐합 정책에 따라 면 단위 농협 1∼3개가 하나의 농협으로 합쳐진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군' 단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농협 전체가 하나로 합쳐진 경우는 거의 없다.

전국적으로 따져보더라도 기초자치단체 1곳에 단 하나의 농협이 있는 경우는 산청과 가평(경기도)이 유일하다.

박충기 조합장./박일호 기자

산청군농협은 1992년 군에 산재해 있던 9곳의 농협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산청군농협 박충기(66) 조합장은 1976년 서기(보)로 농협에 입사해 서기, 과장, 부장, 상무, 전무, 상임이사 등을 거쳤다. 2012년 선거를 통해 산청군농협 조합장에 당선됐고, 2015년 동시선거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곧바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다시 조합장으로 복귀했다.

산청군농협의 현재와 과거를 두루 살피면서, 녹록지 않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의 경제'를 표방하며 탄생한 산청군농협이긴 하지만 헤쳐나가야 할 과제는 또 그만큼의 규모에 비례해서 양산되고 있는 듯했으니까.

- 독특한 농협 구조다. 통합 배경은 무엇이었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농협은 어려웠다. 면 단위 농협으로서는 조합원의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 없었다. 자금이나 경영능력이 다 부족하니까. 그래서 중앙회에서 대대적인 합병운동을 펼친 게 1차적 요인이었다. 하지만 통합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군내에 있는 9개 농협을 3개 정도로 통폐합할 계획이었나 그게 여의치 않았다. 지역별 기질 차이 등이 드러나면서 잘 안되다가, 그러면 차라리 하나로 합치자는 제안이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사실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서 중앙회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측면도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 통합 이후 시너지 효과가 발생되는 것 같나.

"제가 1996년 경제상무를 담당하던 시절 농협 중앙회 토론회에 가서도 역설한 바 있다 시·군 단위 농협은 합병해야 한다고. 조합원을 상대로 한 환원과 생산 지원 사업은 일정 정도 규모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단점은 있다. 일반 회사처럼 수익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보니, 지출은 많은데 수익이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짜임새 있는 농산물 유통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하나가 맞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폭도 넓다고 생각한다."

박충기 조합장./박일호 기자

하지만 현실적인 모순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중앙회에서는 시·군 단위 합병은 추진하지 않는 것 같다. 각 지자체마다 있는 중앙회 지부와 옥상옥 개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신용사업 부문에서는 조합과 중앙회 지부 간에 부딪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산청군농협 조합원 수는 거의 1만 명에 육박한다. 또한 '통합농협'인 만큼 '800억 원탑'을 수상하는 등 판매사업에서도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합장 선거에 대한 관심도도 높은 편이다. 일례로 지난해 조합장 동시선거 때 투표율은 70%였다고 한다.

- 지리산과 경호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실제 농업 환경은 어떤가. 강점과 약점을 꼽는다면.

"역시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청정 지역이라는 것이다. 토질 자체가 다르다. 제가 알기로는 게르마늄이 남한에서는 제일 많은 곳이다. 약점이라 한다면, 경지 규모가 작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 가공사업이나 친환경 농산물 육성 분야는 어떤가.

"가공사업도 만만한 게 아니다. 기술자를 발굴하고 키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물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수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가공사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친환경 농산물은 요즘 그 열기가 시들해진 측면이 있다. 소비자들이 크게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고, 행정적 지원도 줄어들었다. 우리도 메뚜기쌀을 생산하고 있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백t씩 팔지 못하고 있는 농가가 허다하다. 뭔가 큰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박 조합장은 최근 농가 생산 지원을 위한 전담 인력을 채용하는 등 현장 챙기기에 주력하고 있다.

산청에서 생산되는 딸기, 곶감, 산나물 등은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가공산업 기반과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박 조합장은 종합농산물유통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체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정책자금의 도움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1만 2000t씩 생산되던 알밤 생산량은 2000t으로 줄어들었다. 일할 사람이 없는 데다, 값도 떨어지니 '산청 알밤'의 명성은 옛말이 되고 있다. 이렇듯 농협 안팎의 사정은 썩 좋지만은 않다. 하나로마트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도시처럼 큰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조합장이 견지할 수 있는 자세는 '초심'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조합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농'들에게 어떻게든 지원을 해나가면서, 하나씩 생존전략을 찾아가는 일 말이다.

"소농이 많다. 그분들이 조금씩 생산하는 고추, 콩, 참깨, 들깨 이런 것들을 소비자들이 좋아한다. 농협이 통합돼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군 규모 등을 따져보면 그렇게 거대하다고 볼 수도 없다. 조직이 커지면서 관료화되는 측면도 있다. 저뿐만 아니고 우리 직원들의 사고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직원들의 열정을 일으킬 수 있도록 제가 지원을 해야 한다. 첫째는 조합장이 바뀌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전국에서 유일하다시피한 독특한 체제를 이끌고 있는 박충기 조합장은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청정 산청'의 한 축으로 든든하게 버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 임채민·사진 박일호 기자 lcm@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