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진주서 발견돼 네덜란드로 입양…형제·부모·고향에 대한 기억 전혀 없어
28년 만에 불편한 몸 이끌고 고국 찾아이달 말까지 전단 뿌리며 가족 수소문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국에서 태어난 저의 뿌리 그리고 친가족들이 늘 궁금하고 그리웠습니다. 가족들을 꼭 찾고 싶습니다.

이름 : 김숙희

생년월일 : 1975년(또는 1977년) 5월 13일생으로 추정

발견장소 : 경남 진주시 장대동 길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

신체특징 : 뇌성마비"

지난주 진주시내 곳곳에 이런 내용이 담긴 전단이 붙었습니다. 전단의 주인공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온 한국인 입양아 수지 씨입니다. 그는 친부모를 수소문하려 지난달 말 한국을 찾았습니다. 시작은 자신이 발견됐다는 진주에서부터였습니다. 지난 9일까지 진주에 머물렀다는군요. 지난 8일 진주 지역 인터넷신문 <단디뉴스>가 그를 만났습니다. 수지 씨가 친부모를 찾기를 기원하며 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 주

"제 이름은 Suzy Batteau(수지 배토)입니다. 저는 1983년 5월 13일 오후 2시경에 경남 진주시 장대동 길가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뇌성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입양아 수지 씨는 30여 년 만에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으려고 한국을 찾았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경남 진주다. 하지만, 진주는 경찰이 수지 씨를 발견한 첫 장소일 뿐, 그의 고향이 진주인지, 아니면 왜 진주에 있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네덜란드에서 온 입양아 수지 씨.

지난 1983년 경찰에 발견된 후, 수지 씨는 창원에 있는 '홍익재활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아리아나(한국명 안영숙) 선교사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홍익재활원에서 처음으로 '글자'를 익히고, 불편한 다리로 제대로 걷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난다고 했다.

수지 씨가 홍익재활원에서 약 7개월간 지낼 즈음이다. 당시 부산에 살고 있던 지금의 양부모 배토(Batteau) 부부가 재활원에 봉사활동을 오면서 수지 씨와 인연을 맺게 된다. 수지 씨의 양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한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하는 교수였고,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배토 부부는 수지 씨를 입양했고, 수지 씨의 부모가 됐다. 배토 부부는 부모를 잃은 수지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입양의 뜻을 품었다고 했다. 수지 씨는 양부모와 함께 부산에서 4년 정도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 1988년 양부모와 함께 네덜란드로 갔다. 이때가 10세쯤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0일 수지 씨는 남자 친구 마크와 함께 한국에 왔다. 둘은 네덜란드 입양아 모임 '아리랑'에서 만났다고 한다.

수지 씨에게 네덜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2명의 여형제와 남동생들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입양에 대해 얘기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그들 틈에서 너무도 선명한 검정빛 머리카락을 가진 저의 모습이었죠. 나의 검정 머리칼은 누구한테서 왔을까, 나는 어디서 와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의 정체성을 향한 그리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어요."

수지 씨와 마크, 두 사람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진주에 머무르며 친부모를 찾았다. 그들은 전단을 만들어 진주중앙시장, 장대동 시외버스주차장 등 시내를 일일이 돌며 붙이고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나는 어떻게 해서 진주, 장대동 길가에 혼자 있게 되었는지, 혹은 내가 한눈을 팔다, 엄마 손을 놓치게 되었는지, 가족들과 부모들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고,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다면, 계속해서 연락하며 지내고 싶어요."

누구라도 수지 씨가 가족을 찾는 데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알고 계신 분은 02-3210-2452, 휴대전화 010-5528-1115, 이메일 staff@koroot.org로 연락을 주세요.

수지 씨의 말은 띄엄띄엄 이어졌고,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수지 씨는 담담했고 밝았다. 눈물을 비추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에 되레 우리가 먹먹해지는 듯했다.

수지 씨는 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입양아 모임 '아리랑'에서 뿌리의 집(해외 입양인 전문 게스트하우스) 등 입양부모 찾기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 등 부모 찾기에 나설 구체적인 준비를 했다고 한다.

수지 씨의 가족 찾기는 남자친구 마크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마크는 뇌성마비로 걸음이 불편한 수지 씨를 위해 때로는 휠체어를 밀고, 옮기는 등 손과 발이 되었다. 수지 씨가 피곤해 움직이지 못할 때도 혼자서 진주 시내를 돌며 전단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수지 씨가 가족을 찾는 간절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진주에서 전단을 붙이던 수지 씨는 신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누군가 포스터를 붙여도 다들 무관심한데, 한국인들은 저에게 말도 걸어주고, 함께 붙여 주기도 해요. 그들의 친절함에 기분이 좋아져요."

수지 씨는 처음 맛보는 한국 음식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한국 음식 중에 불고기를 가장 좋아해요, 네덜란드 음식은 맵지 않은데, 매운 김치 맛에 반했어요."

머리가 기억하지 못한 '한국의 맛'을 수지 씨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9일 아침 수지 씨는 진주를 떠났다. 앞으로 창원, 부산, 제주, 서울로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닐 계획이다. 수지 씨의 부모와 가족들을 찾는 전단을 붙이는 여정은 이달 30일까지 계속될 것이다. 수지 씨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수지 씨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기쁜 소식이 들려오기를.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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