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파독 간호사 삶 어느새 유쾌한 웃음으로
오랜만의 만남에도 위트 여전학생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

지난달 남해 바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을 걷고 나서 독일마을에 있는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김우자(76) 할머니를 찾아뵀습니다. 파독 간호사였던 할머니는 독일마을 정착 1세대 중 한 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아 드문드문 안부를 여쭈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연락도 없이 지나는 길에 집에 문이 열려 있기에 불쑥 찾아간 터라 송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예전보다 기력이 좀 떨어지신 것 같았는데, 또랑또랑한 말투와 위트는 여전하시더군요. 남해 어느 마을에 금을 캐던 동굴이 있는데, 자신은 힘이 없어 못 가니 데리고 가서 같이 한몫 잡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떠십니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꽤 유쾌해서 바래길을 걸은 피로가 다 가시는 듯했습니다.

다음날 할머니께 여쭌 후에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묵었던 대학생 4명을 데려갔습니다. 전라도, 경기도 등 전국에서 남해로 여행을 온 친구들이었습니다. 이왕 독일마을에 왔으니 예쁜 경치도 좋지만, 실제 파독 간호사를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싶었거든요.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따라나섰습니다.

▲독일마을 김우자 할머니와 대학생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서후 기자

대학생 중에는 실제 간호학과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파독 간호사와 독일마을 이야기를 수업 때 들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을 몰랐다며 신기해하더군요. 할머니는 대학생이 사는 곳이나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등을 일일이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정다운 말을 주고받으셨습니다. 그 연세에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이름과 사는 곳을 다 외우고 계시더군요.

실컷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떠날 적에 대학생들이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나서자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 여기 누가 할머니야? 호호호."

독일마을 남해파독전시관에 있는 김우자 할머니의 독일 시절 증언.
남해파독전시관에 김우자 할머니께서 기증한 독일에서 쓰던 물건들./이서후 기자
남해파독전시관에 김우자 할머니께서 기증한 독일에서 쓰던 물건들./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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