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에 직장 관두고 귀향 "농사 땀 흘린 만큼 보람 느껴"
마늘·시금치 새 재배 기술 앞장 "옛 방식 고집한 이들도 따라와"

"우리 마을에서 주로 재배하는 마늘이나 시금치 농사가 걱정입니다. 며칠 전 비가 조금 오긴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지하수를 이용하다 보니 비 100㎜가 와도 부족해요. 십몇 년 만에 심각하게 물(부족)난리를 겪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의자에 앉자마자 정기룡(43) 이장은 마을 걱정거리를 대뜸 늘어 놓았다. 충분히 이해할 만도 했다.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남해군 지역에는 10㎜ 미만의 비가 내릴 정도로 극심한 여름 가뭄을 겪었다. 잠시나마 가마솥더위를 식혀주는 여름철 소나기조차도 귀했다. 상수도 시설이 없는 데다 지하수도 변변찮다 보니 애써 가꾼 농작물을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은 애가 탔다.

"물 좀 달라고 농어촌공사에 가서 한바탕했습니다. 군에도 요구를 해서 관정 3곳을 파주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근데 처음에는 해주겠다고 했는데, 비가 조금 왔다고 사업이 연기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데, 꼭 좀 사업이 성사됐으면 합니다."

마을 일이라면 내 일같이 발벗고 나서는 남해군 이동면 광두마을 정기룡 이장은 젊은 패기와 도전으로 뭉친 열혈 이장이다. 남해군 200여 마을 이장 가운데 가장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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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 200여 마을 이장 가운데 가장 젊은 광두마을 정기룡 이장. /허귀용 기자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인 마을 주민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이장을 맡게 됐지만 이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3년 전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장이다.

그가 고향인 광두마을로 들어온 것은 10여 년 전이다. 회사보다 농사가 더 적성에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 3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예고 없이 닥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3년간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 사고로 머리 통증을 앓게 됐는데, 통증이 없어진다고 해서 하게 된 금빛 귀고리 때문에 귀고리 이장으로 불리게 됐다.

"미래에는 농업이 살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하고 농사일하고 비교해보니까 농사일이 수입이 배로 많고 자유시간도 마음대로 가질 수 있고 이래저래 훨씬 나았습니다. 열심히 땀 흘린 만큼 대가가 나오기 때문에 농사일을 후회해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생활에 너무 만족합니다."

젊은 그가 이장을 맡은 이후 광두마을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 공동사업이 투명해졌고 마을 주민들의 주 소득원인 마늘과 시금치의 새로운 재배 기술이 도입되면서 수익도 늘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옛날 재배 방식만을 고집했고 새로운 재배 기술 도입을 꺼려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먼저 친환경 농법이나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적용하면서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 아직 큰 변화는 없으나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민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주민들도 차츰 늘고 있다.

"남해군의 주요 농산물인 시금치는 습해를 자주 봅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습해를 줄일 수 있는데, 마을 주민 대부분이 옛날 농사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습해가 심합니다. 군에서 새로운 시금치 재배 방법 등을 알려주면 그대로 적용해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별로 안 좋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결과가 좋으니 따라오시더라고요."

그는 이장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 임기가 끝나는 대로 그만둘 예정이라고 했다.

바쁜 이장 일 때문에 자신의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 보니 어머니나 아내가 그만뒀으면 하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이장직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서라고 했다.

"한 정치인이 권력을 오래 쥐게 되면 문제가 생기듯이 이장 일도 몇 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딴생각이 조금씩 들었습니다. 물이 오래 고이면 썩기 마련입니다. 임기 마치면 그만두려고 생각 중입니다. 마을을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이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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