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25) 난류 따라 여름엔 북쪽 가을엔 남쪽 이동…국내 생산량 대부분 경북·부산 차지

108년 만의 더위…. 정말이지 여름이 끝나지 않을 듯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더니 며칠 사이에 성큼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계절은 여름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어서 반갑잖은 콜레라에 일본 뇌염모기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그럼에도 벌써 다음 주면 20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명절인 한가위다. 해서 이번 <우해이어보> 현장 탐사에서는 한가위와 관련 있는 어종을 찾아 나서기로 작정하고, 온 책을 다 뒤져 한가위를 직접 지시하는 소재로 '새우소라'를 찾아냈다.

이 책에서 하아라자(蝦兒螺子) 또는 하라(蝦螺)로 소개하고 있는 이 녀석은 소라껍데기를 둥지로 빌려쓰는 새우의 한 종류다. 진동에서 나와서 어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녀석의 이름은 '소라새우'라고 기억했다. 어릴 적에 잡은 기억은 있으나 먹거나 제사상에 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새 식습관과 차례 상차림이 그만큼 바뀐 것이다. 새우소라를 소개한 글에 붙인 담정의 우산잡곡을 보면 당시 한가위 인심이 무심치 않은 듯하다. 이날은 유배객인 그도 적소에서 홍씨 성을 가진 예방의 집에 초대받아 잘 차려진 성묘 상에 놓인 새우소라를 보고 노래했다. 그가 본 상에는 산해진미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는데, 맨 앞줄에는 당당하게 새우소라가 진설되어 있었다고 했으니 설마 상만 보고 오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새우소라만으로 지면을 채우기엔 글감이 모자란다. 요즘 제철을 맞은 생선은 전어, 고등어, 갈치 등인데, 흔한 고기라서 그랬는지 이 책에서는 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에 맞춰 겨우 찾아낸 녀석이 오징어다.

오징어는 두족류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연체동물을 두루 일컫는 이름이다. 잘 알려진 녀석만 하더라도 갑오징어와 화살오징어 한치(오징어)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서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즐겨 먹는 것은 화살오징어다.

오징어는 따뜻한 환경을 좋아해서 겨울철에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알을 낳아 봄에 난류를 타고 남해를 거쳐 동해안으로 올라간다. 대체로 한여름이면 울릉도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때 우리나라 동쪽 바다는 온통 오징어 세상이 된다. 지난해 이맘때 아들 녀석의 군 입대를 앞두고 울릉도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온 바다에 집어등을 밝히고 조업하던 모습이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오징어 떼는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이즈음에 오징어를 포획한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는 울릉도산이 유명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영남 해안에서 80% 가까이 잡힌다.

어감에서 눈치 챘겠지만 오징어는 한자 이름이다. <우해이어보>에는 오노, 오노인(烏老人), 복두어, 오적노(烏賊奴), 승어(僧魚) 등 여러 이름으로 나온다. 이름에서 까마귀를 달고 나오는 것은 둘 사이의 천적 관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복두어라 한 것은 녀석을 세운 모습이 머리 위에 두건을 쓴 듯한 모습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담정이 묘사한 생김새는 다음과 같다. "꼬리 위로는 작은 농어와 비슷하고, 몸통과 꼬리는 한 자 남짓하다. 꼬리를 오므리면 돼지털로 만든 빗자루 같고, 펼치면 부채와 같다." 이 글에서 꼬리라고 한 것은 두족류(頭足類)의 특징인 머리에 달린 다리다. 몸통은 작은 농어와 비슷하고 길이를 한 자 남짓이라 한 것은 손암 정약전이 <현산어보>에서 적은 것과 비슷하다.

담정은 오징어가 물새를 사냥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보통 때에는 다리를 모으고 다니다가 물속에서 까마귀를 보면 다리를 펼쳐 거꾸로 서서 새의 몸을 얽는다. 머리 한쪽은 둥글어서 중의 머리 같고 다른 한쪽은 반쯤 열려서 감옥처럼 오목하다. 두건을 쓴 것 같은 머리로 물 위에 떠서 물새인 가마우지나 해오라기, 강가의 갈가마귀나 오리 등이 나타나면 凹자 모양의 머리 안에서 엿보다가 새가 머리를 쪼면 갑작스럽게 감옥처럼 오목한 머리를 모아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순식간에 새가 죽는다."

이처럼 까마귀와 같은 새들의 적이라는 의미로 오적어 또는 오적노라는 이름이 비롯하였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담정이 직접 본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이런 사냥 장면을 관찰한 이가 없어서 고래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이렇게 적은 것일 거라고 추측한다.

머리 한쪽(등)은 중의 머리 같고 한쪽(배)은 반쯤 열려서 오목한 감옥과 같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머리의 형상은 몸통 전체를 둘러싼 지느러미의 안팎을 그렇게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지느러미가 몸통 끝에만 붙어 있는 화살오징어가 아니라 몸통 전체에 붙어 있는 갑오징어를 이르는 것으로 헤아려진다. 녀석의 정체가 갑오징어임은 <현산어보>와 <전어지> 등에 "등에는 하나의 뼈가 있는데, 생긴 모양은 배와 같다. (중략) 약에 들어가면 해표소라고 한다"고 한데서 알 수 있다. 갑오징어라는 이름은 몸속에 품은 갑에서 비롯한 것이며, 필자가 어릴 적에는 집집이 상비약으로 두고 찰과상에 유용하게 썼던 기억이 있다.

담정은 이어 오징어 먹는 법과 맛에 대해 적었다. "오징어의 몸통 살은 맛이 없다. 다리 살은 색이 옅은 황색이나 익히면 홍색이 된다. 국을 만들면 맛이 홍어와 비슷하나 맵지 않고 매우 맛있다. 꼬리 끝에는 군더더기 살이 있는데, 새의 알처럼 독이 있어서 반드시 떼어내어야 한다." 조리법에 대해 국을 끓여 먹는 것만 소개하였지만, <현산어보>에는 "고깃살의 맛이 감미로워서 회나 포에 모두 좋다"고 했다. 두 책에 나와 있는 이 세 가지 음식은 지금도 즐겨 먹는 방식이다.

오징어 요리는 이 책에 나오는 오징어 국을 비롯하여 회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간식거리나 안주로 즐기기도 한다. 젓을 담가서 먹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거의 모든 해물요리에 들어가는 중요한 음식재료로 쓰이고 있다. 낙지만은 못하지만 오징어에도 타우린이 많이 들어 있어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먹물의 핵산 성분은 세포활성화와 노화방지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최근에는 암치료제로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무시로 즐겨 먹기에는 '피데기'(반건조 오징어를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나 마른오징어를 구워서 먹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 간식거리인 오징어는 이번 귀성길에도 많은 이의 입을 즐겁게 해 주리라 기대한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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