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연극 관람 동행인들은 들떠서 어린아이처럼 수다스러워졌다. 결혼 30여 년에 연극 관람이 처음이라는 말에 곁에 있던 친구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거든다. 밀양을 가장 밀양스럽게 만드는 연극제, 가뜩이나 더운 밀양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줄 연극제에 대한 기대가 만발했다. 한여름 밤, 야외극장에서 보게 될 연극 <아마데우스>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줄을 서서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요란한 천둥 번개가 결혼 30여 년 만에 처음 연극 관람하는 아줌마들의 두근대는 마음보다 더 야단스럽게 번쩍, 우르르 울려대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천둥번개는 울려도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우의를 받아들고 야외극장에 입장해 자리를 잡으니 연극이 시작되었다. 조명 속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늙은 살리에르가 등장해서 모차르트에 관한 회상을 시작했다. 마침 연극 시작과 함께 비가 내렸지만 비옷을 입은 터라 모두 개의치 않고 연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밝은 조명 속에서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고 연극도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연극 분위기에 한여름밤의 정취가 더해져 비와 천둥까지 무대 효과처럼 느껴질 정도로 멋있고 자연스러웠다.

관객도 배우도 그렇게 연극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한두 명씩 관객들이 객석을 떠나기 시작했고 주최 측에서 잠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연극을 계속하겠노라고 연극 중단을 선언했다. 모두 야외극장 곁의 천막 아래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살다 살다 비한테 귀싸대기 맞기는 처음이다."

동행한 지인 말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는 맞장구가 이어졌다.

잠시 기다리면 비가 그치려나 했는데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고 급기야는 폭우로 변했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빗줄기는 사정없이 후줄근한 비닐 속으로 흘러들었고 땀까지 범벅이 되어서 아예 맨몸으로 비를 맞는 편이 더 시원하겠다 싶었다. 사람이 더 잃을 것이 없다 싶으면 용감해지는 법, 연극은 어차피 글렀고 비나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건 즐기기로 한 순간에 이미 놀이가 된다는 것을 내 젖은 몸이 먼저 알아챘다.

비옷을 벗고 쏟아지는 빗속에 마치 샤워하듯 팔을 벌리고 섰다. 연극이 중단되어도 조명은 여전히 켜져 있어서 팔 벌리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조명 앞에 서니 마치 내가 거대한 운명에 맞서는 모비딕의 선장 에이허브나, 혹은 열망은 있으되 재능을 선물 받지 못하여 죽을 만큼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가 된 기분이었다. 살면서 언제 또 한 번 내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그런 비를 맞을 수 있을까? 때로는 현실이 연극보다 훨씬 극적이다. 바로 그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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