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비마다 노래로 힘을 얻었습니다"

음악에는 많은 장르가 있다. 그중 한국 사람에게 가장 대중적인 장르는 뭘까? 바로 트로트다. 트로트란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하여 구성진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트로트를 대표하는 유명한 가수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도 그들 못지않은 실력과 끼로 무장한 가수들이 있다. 이번에 만난 이병조(54)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 씨는 지역 가수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예술봉사단 단장으로, 또 도매업체 사장님으로, 1인 3역의 몫을 '척척' 해내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이 씨의 연습실에 도착하니 때마침 마이크를 굳게 쥐고 구성진 트로트 한가락을 뽑고 있었다.

험난했던 과거, 그때 만난 트로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은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온 이 씨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에는 이 씨의 신곡 악보가 놓여있었다. 보통 악보 상단에는 작곡·작사가의 이름과 가수의 이름이 적혀있다. 가수 옆에는 '이병조'가 아닌 '이상용'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상용이라는 이름이 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예명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수라는 직업 덕분에 이름이 두 개가 됐죠."

대화를 나눠보니 말투와 억양이 경남 토박이는 아닌 듯했다.

"고향은 충북 옥천입니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7살이 됐을 때 갑자기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어요. 무작정 부산으로 건너가 건물이나 식당에 환기시설을 설치하는 기술을 배웠죠. 한때는 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IMF가 찾아와 공사를 주는 건설업체가 도산해 일이 없어졌죠. 몇 달간 놀다가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마산에 오게 됐습니다. 살펴보니 마산에는 환기 관련 자재업체가 없는 겁니다. 기회다 싶어 바로 대리점을 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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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이 씨는 가수 이전에 '대한환기'라는 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였다. 작은 가게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경남에서 총판을 할 만큼 성장했다. 이렇듯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우연한 기회로 가수가 됐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힘겨울 때도 트로트 한 곡 부르면 피로가 사라지곤 했어요. 우연히 지역에서 하는 노래자랑 포스터를 보고 참가했는데 덜컥 수상했죠. 그렇게 가수가 됐고 지금까지 지역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남 곳곳의 축제와 무대를 누비면서 노래를 불렀다. 경남지역 가수 중에 이병조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를 찾아와 트로트를 배우고 싶어 하는 제자도 생겼다.

"제일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내려왔는데 한 학생이 트로트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20대 초반이었으니까 벌써 7~8년이 흘렀네요. 무대도 세워주고 노래도 가르쳐주면서 몇 년을 같이 보냈습니다. 최근에는 데뷔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정말 말도 못하게 기뻤죠. 저의 영향으로 트로트 가수가 됐다고 생각하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지역 가수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다

대한민국에는 정말 많은 무대가 있다. 지역 곳곳마다 대표하는 축제·가요제가 하나씩은 있으니 그 수를 어림잡아도 몇백 개는 될 듯하다. 문제는 지역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유명한 가수들만 선호하다 보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은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정말 작은 보수로 불려 다니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관객들은 유명 가수들을 선호하죠. 하지만 지역에도 실력 있는 가수들이 많습니다.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유명 가수들과 견주기에는 인지도 면에서 많이 부족하죠. 출연료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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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수가 많아지다 보니 가수협회도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가장 많은 가수들이 소속되어있는 협회가 2개 있는데요. 이 협회들이 주최하는 행사도 본인들만의 잔치가 되기 십상입니다. 자기 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거죠."

이에 회의를 느낀 이병조 씨는 '다솜문화봉사예술단'이라는 단체를 창단했다. 경남지역의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을 다니며 지역 가수들과 무료 노래공연을 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단체라고 한다.

"제가 노래 말고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도 틈틈이 봉사활동을 했어요. 마산에서 자리를 잡고 난 후 봉사활동을 하러 여기저기 다녔죠. 그러다 보니 뜻이 맞는 사람들이 생겼고 2006년에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다솜'은 순수 우리말로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단체가 되자'는 의미죠."

단순히 봉사만 하는 단체가 아니다. 창단을 마음먹을 때부터 노래공연과 봉사활동을 접목시키고자 했다. 지역 가수들에게 무대도 제공하고 봉사도 하고자 했지만 '음향기기'라는 가장 큰 벽에 부딪혔다.

"음향 회사를 한번 부르면 40~50만 원이 듭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노래공연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당장은 부담이 되더라도 미래를 보고 자비를 털어 음향기기를 구입했어요. 복잡한 구조와 전선으로 돼 있어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마스터했죠. 음향기기가 해결되자 일은 탄탄대로였습니다."

이내 지역 가수들에게 손을 뻗었다. 이 씨의 계획은 말 그대로 '예상 적중'이었다.

"가수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섭외하니 너 나 할 거 없이 참여 의지를 밝혔습니다. 회원들끼리 회비를 거둬서 봉사하는 거라 출연금도 주지 못했지만, 다들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간절했던 거죠. 시너지 효과도 대단했습니다. 저희 활동을 보고 함께하고자 하는 가수나 봉사자들도 많이 있었어요. 지금은 26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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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어른들의 몫

이 씨는 음악을 하고 싶거나 피치 못한 사정으로 방황하고 있는 지역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막무가내로 다그쳐서는 안 돼요. 그런 아이들을 보듬어서 꿈을 키우게 해줘야죠. 저에게 개인 연습실이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여기서 노래를 가르치거나 춤을 연습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실력이 쌓이면 같이 공연도 하는 거죠. 또 방황하는 친구들은 같이 봉사활동을 나가서 더불어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겁니다. 그게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요?"

트로트 가수, 예술봉사단 단장, 업체 사장님까지. 정말 24시간이 부족한 하루를 살고 있는 이병조 씨. 조금은 벅차거나 힘들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이 불필요했음을 깨닫기까지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전혀요. 전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더 하기 위해 노력하죠. 노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연습하고, 더 많은 봉사를 위해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습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아내도 이런 이 씨를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사실 수입의 2% 정도를 매달 단체 활동에 바칩니다. 그래도 아내는 괜찮다고 해요. 우리 집사람도 남 돕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저에게 '우리 남에게 베풀고 살자'고 항상 말해요. 내조를 잘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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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노래는 삶의 활력소

그가 노래와 봉사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한참을 고민 후 입을 열었다.

"막상 정의하자니 어렵네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잖아요. 똑같은 인간인데 가진 자는 행복하고 못 가진 자는 불행한 삶을 사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기회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거죠. 제가 고아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벌써 20대 중반이 됐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직원으로 취직시켰고 다른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면 회사나 공장으로 연계해줬어요. 그런 의미에서 봉사는 한 번 인연을 맺었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거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이내 말을 이어갔다.

"노래는 한마디로 삶의 활력소입니다. 누구나가 그렇듯 저에게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비가 찾아왔겠습니까. 그때마다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 무대에 오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한 무언가가 전해져 와요. 아마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부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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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인터뷰를 끝낸 늦은 시간에도 이 씨는 노래연습을 준비했다. 그 열정에 감탄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저희 봉사단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서 저희 손길이 좀 더 구석구석 뻗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연도 많이 해서 가수 이상용 석 자를 알리는 것도 올해 목표입니다. 그래서 매일 맹연습을 하고 있는데 노래는 정말 아무리 불러도 끝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 가수들의 끼와 실력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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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가수 이병조 씨./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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