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9) 비우니 되레 생기네

최근 사소하지만 제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 그러면서도 흐뭇한 경험을 했습니다. 목공소 밖에서 일하다 어디다 뒀는지 깜박한 가장 아끼던 전동 드라이버와 한잔 마시고 집 앞 택시에서 내리다 잃어버린 지갑이 온전히 되돌아온 것입니다.

목수한테 손에 익은 연장이란 꽤 중요한 것이지요. 같은 기능을 하는 연장이 그것 말고도 여러 개가 있지만, 잃어버린 연장이 가장 손에 익은 것인지라 속이 몹시 쓰렸습니다. 깨져버린 첫사랑을 잊으려고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듯 다른 연장을 들일까 말까 괴로워하고 있을 때쯤 이놈이 같은 일을 하는 어떤 친절한 젊은 목수의 안내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젊은 목수의 눈썰미는 물론 속 깊은 배려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놀라운 것은 보름가량 지나 귀가했는데도 여전히 배터리가 남아 있어서 제작사의 기술력도 인정하게 됐습니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공구.

지갑도 마찬가집니다. 길에서 주워 인근 치안센터에 맡긴 분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더니 "돈도 돈이지만 신분증이랑 각종 카드의 재발급 등등이 너무 번거롭지 않으냐,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사례마저 부드럽게 거절하더군요.

냉정하게 판단할 때 두 사례 모두 원인은 점점 깜박깜박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늙어버린 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 사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마음을 쓰면 잃어버린 사람이 별 문제없이 지낼 텐데"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죠.

이런 경험으로 점점 제 마음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일까요? 저도 조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또는 위로가, 격려가, 기쁨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집니다. 제가 조금 더 배려하고, 친절하고, 마음을 쓰면 누군가가 즐겁고, 기쁘고, 행복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사실 그동안 이런 바탕에서 자그마하지만 나름대로 행동하려 했습니다. 자영업자니 제 기분대로, 생각대로 해도 누가 뭐라고 잔소리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꼭 '자랑질' 하는 것 같아 그렇기는 하지만 시쳇말로 '깔대기'를 대보겠습니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지갑

일 년 반쯤 전의 얘기입니다. 같은 동네 옷가게 새댁으로부터 큼직한 계산대를 주문받았습니다. 제 솜씨가 모자랐는지, 제가 만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일이 틀어졌습니다. 자주 얼굴을 봐야 하는 가까운 곳이어서 그랬는지, 아무튼 선금조차 받지 않았고 한 일인데, 결과는 최악이었습니다. 재료비조차 건지지 못했지만, 성질머리 하나는 '지랄' 같은 제 성격 탓에 물건을 다시 공방으로 거둬들였습니다.

기분대로 거래를 깨뜨리기는 했지만 회수한 덩치 큰 계산대 처리문제가 난감했습니다. 그때 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좋은 곳에 기부하세요"라고 하더군요. 거참 좋은 생각이라고 느껴 그렇게 했습니다. 인근 지역아동센터인데 조금 고쳐 기부한 계산대는 아이들의 가방보관대로 맞춤처럼 활용됐습니다. 저도 나름 흐뭇했습니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한 기업이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월급 자투리를 모은 돈을 그 아동센터에 기부했고, 그 돈으로 가방보관대와 어울리게 책장과 앉은뱅이 책상 제작을 주문해줬습니다. 기부가 제게는 일거리 주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고마워서인지, 제 가구가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장을 바꾸고 나자 그 센터장은 "공부방 낡은 책상도 모두 바꾸고 싶네요"라고 했고, 저는 "또 다른 기부자를 찾아봅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창동 일대를 대상으로 작품활동 하던 사진동호회 회원 한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어느 회원이 일하는 회사가 기부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의 소개로 기부를 권유했고, 일이 잘 성사됐습니다. 자연스레 그 일은 제가 맡게 됐습니다. 불가피하게 시작한 기부행위가 제게는 적지 않은 일거리로 돌아오게 된 셈입니다.

목공소를 차렸던 2013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료의 소개로 함안지역 한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 비품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학교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7월 말 뜨거운 날이었습니다. 책장과 책상, 신발장 등 작업량도 적지 않았지만, 목공소 회원과 후배의 도움으로 목표했던 일을 모두 성사시켰습니다. 보람이 컸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봉사활동을 의뢰했던 경남자원봉사센터장이 찾아와 감사인사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제 친구더군요. 봉사활동은 반가운 만남을 성사시켜주기도 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서툰 목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이런저런 기억들을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모든 신경이 회사업무에 쏠리고 생활도, 인간관계도 모두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놓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사이 나름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됐는데, 이런 겁니다. 가장 큰 '빅 데이터'라고 하는 페이스북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지내는 분들 중심으로 친구관계를 맺고, 올린 글들을 읽어보거나 또 읽혀서 새로운 친구도 생겼습니다. 친구 항목을 살펴보니 '함께 아는 친구'도 표시해 주더군요. 제 페북 친구의 숫자는 800명에 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몇 친구는 저와 함께 아는 친구가 300명이 훨씬 넘더군요. 오프라인에서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친구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습니다. 함께 아는 친구가 많은데 이들과 친구가 된 것은 최근이라는 점이 신기하더군요.

심지어 페북 친구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만난 적이 없던 사람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눴습니다. 헤어지고 한참 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때 처음 얼굴을 마주한 경우더군요. 제가 민망해할까 그랬는지 그분도 스스럼없이 대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관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표시해주는 데이터가 성향이나, 살아가는 방향을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 다니는 때와는 달리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친구들의 구성 또한 그런 방향으로 형성이 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제가 지나온 흔적 또한 그런 바탕을 깔아온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목공소를 시작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알게 된 단체들은 대부분 시민단체이거나 봉사단체인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몸담았던 직장이거나 거래처, 업무상 알게 되는 기관, 단체 등이 아니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쪽으로 인간관계가 확장되고 있는 겁니다. 일일이 들먹이기는 좀 뭐하지만 목공소와 자주 왕래하는 단체는 서툰 목수의 손길조차 필요한 곳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대가가 없어도 제가 하고 싶고, 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면 앞으로도 흔쾌히 참여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먹고살려고 일거리를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별것도 아닌 것을 두고 이런 '자랑질'을 해대려니 좀 낯뜨겁기는 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목공일 외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면서 살고 싶습니다. /글·사진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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