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여름 무더위 같은 짜증 가득…원칙·상식 통하고 나눔 세상 어서 오길

세상에…. 딱 삼 일 만에 여름 공기가 가을 공기로 변했습니다. 더운 열기로 잔뜩 찌푸렸던 여름 하늘이 뭉게구름 가득한 가을 하늘로 변신 중입니다.

삼 일 전. 운동장엔 뙤약볕이 쨍쨍 내리쬈습니다. 과꽃은 말라 비틀어져 고개를 숙였습니다. 식물들은 최대한 웅크린 자세로 비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툴툴거리며 학교에 온 아이들은 에어컨만 바라봅니다. '수업보다 찬바람'을 외칩니다. 에어컨 가동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입니다. "얘들아! 조금만 참으면 안 될까?" 말을 하는 내 등에도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전기 없이 살던 옛날 사람들은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살았을까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 보지만 아이들 아우성은 그대롭니다. 마지못해 귀로는 듣는데 눈빛은 '닥치고 에어컨'입니다.

삼 일 후. 말라가던 과꽃은 다시 고개를 들어 꽃을 피웠습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나도 몰래 '과꽃'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꽃밭 가득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예쁘게 피었습니다. 타들어 가던 밭작물들은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가을비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집니다. 에어컨만 바라보던 아이들 태도도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아침 시간엔 차분하게 책을 읽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온 선선한 바람이 교실을 한 바퀴 돌아 골마루 창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아이들 모습에도 생기가 돕니다.

집에서는 갑자기 찬물에 몸 담그기가 힘들어 온수 기능을 이용해 따뜻한 물을 틀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길가 벚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어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집니다. 들판에 보이는 벼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갑니다. 밤도 익어가고, 감도 익어갑니다. 달력을 들춰보니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만 생각해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을이 가까이 와 있는 줄 모르고 참을성 부족으로 안달복달했던 면이 꽤 큰 듯합니다. 아무리 더워도 절기는 가을이었는데. 입추도 처서도 지나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는데. 계절 변화를 오로지 온도만으로 가늠하기 때문에 더위가 그렇게 금방 지나갈 줄은 생각도 못한 채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것입니다. 계절 변화를 눈에 보이는 온도계 온도만으로 가늠하기 때문에 그랬던 듯합니다. '오늘의 날씨'만 보고 있으면 언제쯤 더위가 물러날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시원한 가을로 접어들었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온통 한여름 무더위같이 짜증스런 일들로 가득합니다.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개돼지' 발언,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초호화 외유' 의혹, 이어지는 '국기 문란 행위', 어느 장관 후보자의 1년 생활비 5억 원 논란 , 4대 강 사업 이후 해마다 반복되는 녹조 현상….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보다 더 짜증나는 소식들입니다.

윤병렬.jpg

짜증스런 무더위 지나 어느새 가을이 오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도 그렇게 시원한 가을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딱 삼 일 만에는 불가능하겠지만 삼 년 만에라도 아니면 삼십 년, 삼백 년 만에라도 세상이 좀 더 좋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권력 가진 사람은 군림하려 듭니다. 또 권력을 이용해 특혜를 누립니다. 아랫사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기까지 합니다. 권력과 자본의 민낯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알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순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덜 가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줄 줄 아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누구나 공평하게 세금 내고 똑같이 군대 가는 세상.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며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세상이 문득 찾아오는 가을처럼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