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4편
13세기에 만든 오르비고 다리를 건너…멋진 풍경 속 여유로움에 감격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어제 만난 한국 아가씨 주선이와 스페인 여성 차로, 스페인 아저씨 비센테와 하우메도 같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어제 걸을 때부터 간간이 발이 아파 천천히 걷던 차로가 영 잘 못 걷습니다. 발뒤꿈치가 아프다며 자꾸 먼저 가라고 하네요. 맘은 안 편하지만 같이 걷다가는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습니다. 처음엔 어제처럼 찻길을 따라 걷는 길이 계속되더니 날이 밝아지며 스페인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동트는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 나무들의 멋진 사열식! 걷는 사람만이 느긋하게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아스트로가 20㎞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20개의 아치가 있고 '명예의 통행로'라 불리는 오르비고 다리가 보이고 다리 건너편에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마을이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다리에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다리 건너자마자 있는 바르(bar)에 들러 오르비고 다리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넘치는 이 행복감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이곳도 다음에 걷게 되면 꼭 묵어가고 싶은 동네입니다. 자주 보는 이탈리아 순례자 3인방도 어디서 묵고 걸어왔는지 바르 앞에서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습니다. 어제도 아침에도 바르에서는 만났었는데 이 친구들과 알베르게 인연은 별로 없나 봅니다.

20개의 아치가 있고 '명예의 통행로'라 불리는 오르비고 다리. 13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며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주선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걸었습니다. 주선이는 어제 처음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아마 피곤할 거거든요. 차로는 잘 오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을 끝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을 선택해 갔더니 또 큰 찻길과 함께 가는 길이네요. 어제, 오늘 계속 찻길과 함께하네요. 피하고 싶은 최악의 길을 선택해서 걷게 되었지만 정보도 부족했고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거니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죠?

'산토 토리비오 돌십자가'가 있고 그 너머로 아스트로가(Astorga)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아스트로가에 다 와가는데 철길이 있어요. 건너는 철육교가 어찌나 복잡하고 긴지 무거운 배낭을 진 순례자들을 힘들게 하네요. 큰 순례자상이 앞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오늘 거리가 짧아서 일찍 도착을 했어요.

20개의 아치가 있고 '명예의 통행로'라 불리는 오르비고 다리. 13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며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한국인 한 명이 인사는 하지 않고 '아이고 한국사람 진짜 많다'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휙 나가요. '헐~! 그럼 당신이 오지 말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전 한국사람 보면 반갑던데 뜻밖에 한국인한테 한국인임을 알리지 않고 친절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냥 다른 나라 사람한테 대하듯 만 해도 될 텐데, 무슨 피해라도 많이 입은 건지 나 원 참!

산토 토리비오 돌십자가가 있고 건너편으로 아스트로가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 카미노 순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건물을 만나다

빨래 널고 들어와 주선이랑 동네구경 나가려는데 맞은편 침대에 한 번씩 마주쳤던 사람에게 '시내구경 가는데 같이 갈까' 하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납니다. 폴란드에서 혼자 왔다는 니나! 니나와는 이렇게 인연이 되었어요.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곡선과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게 특징.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금도 건축 중인 로마가톨릭 성당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설계함)가 지었다는,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이 된 팔라시오 에피스코팔(Palacio Episcopal 주교관)로 먼저 갔어요. 가우디가 지은 건물을 실물로 보기는 처음인데 세심한 설계와 아름다움에 놀랐답니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주교관 건물.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심한 설계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등 감탄을 하며 둘러보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프랭크와 피터 부자예요. 반가움에 인사를 하고 먼저 나오는데 건축가인 프랭크가 보는 가우디의 건물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여기저기 성당도 둘러보고 오다가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초콜릿도 사먹었지요. 니나는 허리에 매는 가방을 산다고 가게 문 열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우리 먼저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주방도 있고 한국인도 있으니 당연히 밥을 해먹어야겠죠. 메뉴는 아시죠? 하하. 라면수프 감잣국, 달걀말이, 샐러드, 끝!! 밥은 당연히 많이 했어요.

밥을 먹는데 아까 한국인 많이 왔다는 말을 한 사람이 왔어요. 함께 먹자고 했더니 사양 안 하고 맛있게 먹더라고요. '거봐~! 한국인 많으니 좋잖아~ 한국 음식도 먹고 한국인들 여행수준이 이 정도라고 세계사람들한테 알리는 계기도 되고~' 이렇게 속으로만 생각하고 내색은 하지 않았어요. 식사하고 돌아오니 차로가 와 있었어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픈 발로 이곳까지 온 거예요. 발이 많이 아픈데 그래도 앞으로 계속 걸을 거라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주교관 건물.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심한 설계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끈기 있는 그녀' 차로의 발이 어서 낫길

저녁에 성당에 미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미사는 아니고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식이었어요. 노란 화살표에 각 나라말로 '나는 길입니다'라고 쓴 것을 봉사자들이 줍니다. 내가 길이라니요. 엄청나게 사명감이 느껴지는 글귀였어요. 어떻게 나의 길을 닦아야 할지 많이 묵상하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축복의 말을 적은 카드도 주었는데 그림이 아주 좋았어요. 걷는 두 사람 사이에 예수님이 함께하는 그림인데 내가 걷는 길에 누군가 함께해주신다 생각하니 너무 든든했고 앞으로 더 두려움이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축복을 듬뿍 받고 나와 광장으로 갔어요. 아까 시내구경 할 때 보니 공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바삐 갔는데도 공연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요. 그래도 경쾌한 음악을 몇 곡 더 연주를 해 주어서 함께 춤도 추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이탈리아 삼인방을 만났어요. 오늘은 모처럼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는데 알베르게가 커서 못 봤던 거예요. 숙소 앞에서 사진 찍고 들어와 차로 발을 마사지해 주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먹는 약도 주었고요. 내일은 차로의 발이 안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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