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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쌀 기반 삼아 '뿌리 강한 농협'으로

[임채민 기자가 만난 농협CEO] (2) 남거창농협 허원길 조합장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2016년 08월 29일 월요일

바야흐로 6차 산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농협(수협) 역시 거센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치러진 '농축수협·산림조합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는 그 변화의 길에 작은 이정표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닥칠 것입니다. 그래서 일선 조합장들을 만나 농어촌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변화의 전조를 어떻게 체감하고, 대응하는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허원길(57) 조합장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78년 남거창농협의 전신인 '남상농협'에 입사했다. 집안 농사일을 한창 돕고 있을 때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곧바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월급을 제때 못 받았다고 한다. 쌀 매상 시기가 되면 남상농협만 해도 쌀 5만 가마니가 입하되는 시절이었다. 그것을 농협 직원들이 일일이 등짐을 지어 날라야 했다.

농촌에서 농협이 막 태동하고 자리를 잡아갈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남거창농협 건물은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1982년 남상면 출신인 고 유복수 선생이 6700만 원을 쾌척해 지어진 건물이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세월은 흘러 각 면마다 하나씩 있던 농협은 통폐합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남상농협과 남하(면)농협이 합쳐져 지금의 남거창농협으로 면면을 이어가고 있다.

쌀 생산 농가가 조합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거창농협 허원길 조합장. 요즘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농민과 좌담회를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남거창농협은 대한민국의 시골 농촌마을 농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면 단위 농협 두 개가 통폐합돼 하나의 농협을 이루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특히 쌀 생산 농가가 조합원 대다수를 이루고 있고, 농협에서 추진하는 경제사업 중 '쌀 매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일반적 추세를 이야기하자면, 쌀과 같은 미곡이 아닌 과수나 하우스를 활용한 특작물이 농협의 효자 생산물로 각광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거창농협의 주력 생산물이 미곡이라는 점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채롭다고까지 할 만하다. 실제 쌀 전업농이 조합원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쌀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남거창농협은 농협의 역사적 전형성을 담보하고 있으면서도, 갖가지 환금작물로 무장한 무수한 여타 농협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 조합장의 고민은 시작되고 있었다.

남거창농협은 쌀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렁이 농법'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일반 쌀보다는 30%에서 많게는 60% 정도 더 나은 가격으로 팔린다. 남거창농협의 한 해 경제사업 규모는 200억 원가량이고, 이 중 쌀과 사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한다.

허 조합장은 남거창농협 전무 출신이면서, 지난해 전국조합장 동시선거를 통해 당선된 초선 조합장이다. 누구보다 농협의 안과 밖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남상면과 남하면 인구가 5000명 정도 됩니다. 그중에 우리 조합원이 1800명입니다. 한 집에 한 명씩은 조합원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 그동안에는 우리 농협이 신용사업에 초점을 맞춰 온 게 사실입니다. 예금과 대출 규모는 약 2000억 원인데 작은 규모가 아니죠. 하지만 이제 경제사업 위주로 방향을 바꾸어 가려고 합니다. 방향을 트는 게, 이게 참 어렵네요. 수익 내기가…… 참."

15년 전 '남상·남하' 들판에서는 우렁이 농법이 시작됐다. 이렇게 생산된 쌀은 거의 대부분 창원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마산농협과 남창원농협 등과 돈독한 협업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게 허 조합으로서는 정말 다행스럽고 고맙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우렁이 쌀'은 '우체국 택배'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남거창농협의 '킬러상품'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소농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방침은 영세농이 탄탄한 강한 농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대형 농가는 시스템 구축이 잘 돼 있습니다만, 영세농은 작물을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농협까지만 농작물을 싣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류비나 포장비를 지원해서 대신 팔아주는 거죠. 뭐 그렇긴 해도 올해 수매가가 어떻게 책정되는지가 제일 큰 걱정이긴 합니다."

남거창농협의 쌀은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고, 판로 역시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과수의 가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게 고민입니다. 생산은 많고 소비는 줄고, 요즈음에는 열대과일이 많이 들어오는 영향도 있습니다. 아직 작년 사과가 저장고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햇사과가 나오는 철인데 빨리 소비를 시켜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자체적으로 해결을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큰 관점에서 정책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물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산지유통센터(APC)를 확보해서 가격 증폭에 대비하는 물류 조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터는 확보해 놓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선 농민들의 한숨을 깊게 만드는 '쌀 수매가'와 과일 가격의 불안정성은 농촌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온 고질적인 문제다. 이를 일개 농협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고, 최대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남거창농협은 직원들이 직접 육묘장 운영을 하면서 쌀 영세농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가공공장을 통해 칡즙·석류즙·사과즙 등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가공 공장 운영도 위험한 일이긴 합니다. 마케팅이 안 되니까요. 오프라인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지만 마케팅은 대기업에 맡기고, 우리는 최대한 원료를 소비할 수 있게끔 반제품 형태의 상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직접 '신토불이'라는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봄에 시작했는데 어렵긴 어렵네요. 하루 매출이 한 200만∼300만 원 정도 됩니다. 차츰 나아지겠죠."

수출도 시도해봤다. 우렁이 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상품인데, 단가가 안 맞아요. 호주에 세 차례에 걸쳐 6000포대를 보낸 적이 있는데, 바이어들이 가격을 너무 후려치더라고요. 대금 결제도 늦고. 결국 한 200만 원 손해 보고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안타깝죠."

허 조합장은 마을마다 다니면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정해진 형식 없이 주민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곧 민심 청취인 셈이다. 그렇게 하나씩 경청한 말은 구체적인 농협 정책으로 다듬어져서 나오고 있다. 물론 아주 '골치 아픈' 일임에는 분명하다. 한계점이 분명한 한국 농업 정책 속에서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향 농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은 허 조합장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고향 들녘을 오늘도 누비고 있다.

"우리가 일한 만큼 보답이 돌아옵니다. 그 보답이 비록 대단한 경제적인 혜택은 아닐지 몰라도, 시골 분들 마음속에는 작은 일도 오래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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