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행복사회 유럽' 정기석 지음
두 번 걸쳐 둘러본 유럽 7개국 일상·환경 꼼꼼히 담고 풀어내
기업 중심·4대 강 사업 견주며 진정한 '공동체 삶'일깨워 줘

<사람 사는 대안마을>, <마을 시민으로 사는 법>, <농부의 나라>, <오래된 미래마을>, <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

다섯 권의 책 중 <농부의 나라> 빼고 모두 '마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인터넷 서점에서 <농부의 나라>를 살펴보니 다른 책들과 분위기는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책 <행복사회 유럽>을 읽기 전에 저자가 이미 낸 책들을 살펴보았다. '사회적 경제의 힘으로 지속 가능하게 진화하는 마을공동체 모델을 탐구하고 있다'로 맺는 저자 소개(책 <농부의 나라>)를 읽으면서 대충 감 잡았다. 우리 '과'인데 마음만 있는 다수의 우리와 다르게 깊숙이 들어간 분이네. 이런 느낌.

<행복사회 유럽>은 저자가 두 번에 걸쳐 둘러본 유럽 사회 연수 기행문이다. 2014년 봄에는 유럽의 농촌 마을 공동체를, 2015년 겨울은 유럽의 도시 지역사회를 다녀왔다. 여행 후 인천공항 입국장에 도착할 때마다 어김없이 화병과 갑갑증이 재발했다고 밝히는 데, 아직 이 나라를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음에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 산타젤로 성에서 바라본 바티칸시국.

책에서 소개하는 유럽은 영국,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순으로 7개 나라다. 런던 히스로 공항 도착을 알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계획대로 되면 여행이 아니지. 이역만리 타국 땅에 도착한 첫날부터 1년 만에 통풍이 재발했다. 통풍약을 구하기 위해 겪은 에피소드 속에서 영국 의료시스템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인도계 약사의 딱딱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영국이, 런던이, 유럽이 좋아졌다.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의사의 조국, 인도는 물론". 저자는 이렇게 솔직하다. 책을 마치는 내내 그런 솔직한 느낌들을 담아내면서 유럽사회의 장점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대비시킨다.

서울시와 공원녹지 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런던이지만 내용을 살피면 큰 차이가 있다. 서울은 대부분의 공원녹지가 시 외곽에 있어 마음먹고 움직여야 하지만, 런던은 시민의 주거 단지, 생활공간과 인접해 있다. 영국 정부가 소유하고 남은 공유지를 시민들이 여가생활을 위해 이용하는 공공토지로 바꾼 결과다. 돈이 되는 땅을 기업에 팔아 건물을 올리지 않은 결과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2000년 전 나폴리의 콘크리트 방파제가 내구성과 친환경성이 뛰어나다거나, 베네치아는 운하로 먹고살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레 우리의 현실을 대비시킨다. 아파트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쓰레기 시멘트를 사용하고, 운하 건설을 위한 4대 강 사업은 우리의 강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한 프랑스 퐁네프 다리.

'겨울여행은 짐이 많아서 불편하지요'로 시작하는 스위스는 이 책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이웃, 그리고 그녀가 스위스에 살게 된 이야기, 소록도 벽안의 수녀님들과의 인연, 스위스 거대 생활협동조합 미그로와 코프,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 아인슈타인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그들이 머물렀던 취리히 이야기, 프랑스 혁명과 스위스 용병과 '빈사의 사자상' 등등.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불후의 명곡이다'로 시작하는 체코 이야기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느 여행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문학 기행에 더도 덜도 아닌 저자의 식견과 감상이 전부다. 퀸을 시작해서 카프카, 밀레나, 줄리엣 비노쉬, 밀란쿤데라를 허우적거리다 빠져나온다. 한참을 감상에 빠져있다가 마지막에 필스너와 멀드와인과 콜레노로 한식 세계화를 비판하는 것은 다른 글들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서두에 밝혔듯이 우리는 마음만 있고 그렇게 깊이 발 담그지 못하는 부분인데 저자의 설명과 적절한 비유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이 남다른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봐도 생각나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다. 처음에 저자의 개인적 감상이 많아 '이 책의 주제가 뭐지?'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끝까지 달려오게 한 윤활유였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가니쉬라 생각한다.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의 영화를 다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저자에게 줄리엣 비노쉬는 뮤즈리라.

281쪽, 피플파워, 1만 40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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