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경남의 재발견'이라는 취재를 하면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낙동강을 낀 지역에서는 빼놓지 않고 꺼내는 얘기가 둘 있었다. 1987년 하굿둑, 2012년 4대 강 사업이다.

양산 물금읍은 그 오래전 웅어가 유명했다. 보리 익을 무렵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굿둑이 만들어진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지금도 몇몇 식당이 웅어회를 내놓지만 섬진강 혹은 목포에서 들여오는 것이라고 한다. 양산 원동면은 딸기·수박 주산지였다. 낙동강변 모래땅에서 물이 자연스레 올라오니 재배하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고 한다. 또한 양산 물금읍은 '모래 감자'로 이름 날렸다. 낙동강변 물 빠짐이 좋아 수분 적은 타박 밤과 같은 맛으로 입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러한 특산물은 4대 강 사업으로 사라졌다. 여기 땅을 미리 사둔 외지인들도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았다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양산 부가 유출됐다'며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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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생(69) 씨는 김해 상동면 매리마을에서 40년째 낙동강 어민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 사이 하굿둑 건설, 4대 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더 이상 어업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됐다. 김 씨가 녹조 범벅인 낙동강 물을 퍼올려보고 있다. / 남석형 기자

밀양은 일제강점기 때 연어 부화장이 있었다. 이 또한 하굿둑 영향으로 옛 기억으로 돌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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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섬진강 재첩'이 대명사처럼 됐지만, 30년 전만 해도 '낙동강 재첩'을 우선으로 대접했다. 부지런히 강바닥을 긁기만 하면 노랑조개를 얼마든지 채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게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지만 달가운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맛 좋은 고급어종이 널려 있으니 뼈가 억센 참게에게 눈길 줄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들 역시 하굿둑, 4대 강 사업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낙동강은 이렇듯 30년 사이 큰 변화를 겪었다. 지금은 강빛을 잃고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내줄 게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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