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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 마음 적셔준 '따뜻한 이정표'

[바래길에서 만난 사람들]남해 서당터 마을 서태세 어르신의 지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

8월 중순. 지독하게 더운 오후 내산저수지 바로 아래 마을로 들어섰다. 아담한 마을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문득 어느 집 대문간 너머로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어르신이 보였다. 마을 이름이나 물어보자 싶어 말을 붙였다.

- 어르신 안녕하십니꺼, 이 동네 이름이 우찌되능가요?

"뭐할라고 묻소?"

- 아아 바래길 걸으면서 지나가다보이 동네 표시석도 없고 그래서예.

"이리 들어와."

- 예?

"더븐데 그늘에서 얘기해!"

- 아 예.

"어디서 왔소?"

- 창원에서예.

"우찌 마을을 묻소?"

- 제가 천하마을에서 여까지 걸어왔는데예, 이 동네가 내산마을 같긴 한데 생각보다 작아서 긴마민가 하네예.

"여 좀 앉으이소."

- 예? 아입니더, 어르신이 계속 앉아계시지예.

"아이고마, 앉으이소. 내 잠깐 드갔가 오게."

어르신은 집안을 한참 뒤적이시더니 오래된 달력과 유성 매직펜을 들고 나오신다. 그리고는 달력 뒷면에다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신다.

"자~, 그라믄 휴양림까지 왔는데, 휴양림에서 내려오니 이쪽에 큰 저수지가 있고이."

- 예, 예.

"자~, 저수지꺼정 왔다잉. 좀 지내서, 여 우게 마을 하나 있다이. 그기 구암촌."

▲ 남해바래길 5코스 내산저수지 아래 서당터 마을에서 만난 서태세 어르신이 직접 지도를 그리며 길을 설명하고 있다.

- 아, 구암촌.

"그래서 인제 또 이리 내리온다이. 인자 이 마을에 왔다. 여기는 서당터."

- 아아, 요 옛날에 서당이 있었습니꺼?

"하모. 자 여기가 서당터이. 이래가 또 내려간다이. 내려가몬 이 밑에 또 큰 마을이 있어."

- 예, 예.

"여게는 본땀. 어, 본담이라케야되나 본땀이라케야되나…. 에이 뭐, 자 이래갖고 또 내려간다이. 이쪽에 또 부락이 있어. 가만 있자, 이게 전에는 건넷담이라 캤는데, 요새 뭐라카는지 생각이 안 나네."

그렇게 달력 윗부분에서 시작한 지도는 밑부분까지 이어진다. 더운 여름 낮 땀을 뻘뻘 흘리시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어르신에게 차마 길을 알고 있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그저 '예,예' 하고 만다. 그렇게 어르신이 그린 지도가 완성됐다.

내산리 서당터 마을 올해 77세 되셨다는 서태세 어르신이 그린 지도는 그 어느 바래길 지도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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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