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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도 쌈 싸먹었다는 버릴 것 없는 민어

[신우해이어보] (24) 보양에도 으뜸인 민어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webmaster@idomin.com 2016년 08월 23일 화요일

근래 여름철 최고 보양식으로 민어(民魚) 요리가 부쩍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TV프로그램이나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마치 외출했다가 돌아온 집주인처럼 민어가 떡하니 안방을 차지했다. 그 영향으로 민어 골목이 유명한 전남 목포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서해와 남해 경계인 전남 신안 일대에서 많이 잡히지만 옛날에는 남해안에서도 민어가 제법 잡혔던 모양이다. 담정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민어의 일종인 '녹표'와 근연종으로 '백표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모양은 사어(모래무지)와 비슷하지만 약간 넓적하고 맛이 시다. 껍질은 모래알 같은 점이 있으나 부드럽고 억세지 않다. 배속에 긴 부레가 있는데, 연한 녹색이고 맛이 감미롭다. 아교를 만들면 푸른 유리가 녹은 것처럼 진득해진다. 견고한 점성이 있어 동어의 부레보다 낫다. 표동어는 민간에서 민어라고 하는데 부레가 황색이다. 남쪽과 북쪽지방에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녹표를 잡으면 그 부레를 말렸다가 몰래 동래(東萊)의 왜인(倭人)시장에 내다 팔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을려 구워먹는다. 서울의 상인들이 물어오면 숨겨놓고 꺼려서 말하지 않는다. 관청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무슨 물고기를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표동어는 민어의 한 종류인 '동갈민어'가 아닌가 추측한다.

▲ 최고의 횟감 중 한 가지로 꼽히고 있는 민어는 그 맛도 뛰어나며 차례상에 찜으로 많이 올리는 대표적인 서민 생선이다. /연합뉴스

민어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민어' 또는 '면어'라고도 부른다. 민어를 방언으로 개우치, 홍치(전남), 불등거리, 보구치, 가리, 어스래기, 상민어라고도 한다. 아마도 민어의 등이 붉은빛이 도는 것과 큰 물고기라는 의미가 이름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말린 민어를 수치, 암치, 통치 등으로 불러 암·수와 어린 민어를 구분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민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비늘과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민어는 낮에는 깊은 바다에서 놀다가 밤이면 수면으로 올라오는데 주로 새우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새우어장이 발달한 곳이 바로 민어 산지다. 민어는 산란기에 연근해로 모여들어 부레를 이용해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 지금도 민어를 잡을 때 통대나무를 바닷속에 집어넣고 그 소리를 간파하고 그물을 던지면 틀림없다고 한다. 민어는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기 때문에 바로 피를 빼어내고 얼음에 넣어 선어(鮮魚)로 먹는다. 신선한 민어는 회, 탕, 구이, 장국, 포, 찌개, 국, 조림 등으로 두루 조리해 먹는다. 조선시대에는 여름 보신탕으로 첫째 민어탕, 둘째 도미탕, 셋째 개장국이라고 하였다. 민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쓸개를 제외하고는 버릴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머리 고기와 껍질, 부레를 일품으로 친다. 머리 고기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민어껍질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밥을 싸 먹는데 이것 때문에 논밭을 다 팔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민어 부레는 부레에 소를 채워 순대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날것으로도 먹으며, 약으로 쓰기도 하였다. 또한 부레는 말렸다가 풀로 만들어 접착제로도 썼다.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어풀이 따로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가는 풀로 쳤다. 일반적으로 풀이라고 하는 아교는 소 껍질을 재료로 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며, 한국 전통으로 민어의 부레만을 이용해서 만든 '부레풀(어교·魚膠)'은 각궁 등 목기의 제작과 보수에 최고급품으로서 쓰였다. 특히 조선의 성능이 우수한 각궁, 즉 물소뿔로 만든 활은 민어 부레풀을 접합한 것인데 궁력이 강하고 크기가 짧아 우수한 무기였다.

민어회

한방에서는 민어가 위장을 열어 식욕이 없는 사람의 입맛을 돌게 하고 배뇨를 도와준다고 한다. 또 민어의 부레로 만든 한청 덩어리 같은 아교주(阿膠注)는 허약과 피로를 치유하고 몸이 여위는 것을 보(補)하고 잦은 기침과 코에 피가 나는 증상을 다스린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민어의 부레를 마산 진동 일대의 어민들은 부산 왜관에 있는 왜인들에게 몰래 팔았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진상품을 열거해 보면 민어는 주로 평안도, 황해도, 충청도에서 많이 생산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정조 때는 민어어장 한 곳의 세금을 6냥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의 죽방렴과 같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구렴(防口簾) 한 곳의 세금이 2냥이라고 하니 그 크기는 비교할 수 없지만 민어 어장에 대한 세금이 다소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라에서는 백성에게 지독하게 세금을 거두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보면 백성 민자를 쓰는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다소 슬프게 느껴진다.

민어매운탕

"푸른 파도를 겹겹이 떠내듯 날카로운 칼날로 붉은 내 살을 도려가라. / 굶주려 울부짖는 건 오히려 너희가 아니더냐. / 흰 뱃속 깊이 간직한 균형 잡는 부레도 거침없이 떼어가라. / 어차피 너희가 아닌 다른 쪽으로 이미 기울어졌으니. / 그러나 내 눈은 두어라. 너희들의 모습이 깊게 새겨져 있으니 / 그리고 내 비늘은 그냥 바다에 버려라. / 편편마다 너희들의 마음과 행동이 각인되어 있으니. / 바다로 돌아가 그 하나하나가 다시 민어가 되어, / 또다시 너희를 뚫어질 듯 보려고 하니 그냥 버려라. / 지금 너희들이 백성들을 그냥 버리듯이…." - 시 '민어' 전문. 박태성(2016)

우리나라에서 민어 어장으로 가장 이름 높았던 곳은 전남 신안 암자도 앞 태이도(타리도)이다. 일제 강점기에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앞에 있는 타리도에서 민어 파시가 열렸다. 해방 이후에 민어 파시는 인근 재원도로 옮겨가 1980년대까지 큰 성황을 이뤘다. 섬과 섬 사이를 배를 밟으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어선이 많았다고 한다. 배를 따라 어부와 돈이 몰리고, 술집과 색싯집 여자들도 몰려들었다고 한다. 현재도 목포의 민어 골목이 전국 제일이다. 옛날만큼이야 낭만이 흐르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그 체취가 물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최기종 시인의 시 '가장 목포다운 곳'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전략) 예전에 구릿빛 팔뚝 굵은 아재들이 젓가락 장단 두드리던 곳, 꽃잎 같은 색시들이 술을 치고 노래 부르던 곳, (중략) 타지에서 작가들이 항동시장에 오면 파뿌리 아줌니들이 새색시 되어서 감태, 청태 내오고 갈치속젖, 꽃게장 내오고 꼬막무침 내오고 조기찜 내오고 목포바다도 내옵니다. (후략)"

몸길이가 60∼90cm에 이르는 바닷물고기 민어. /연합뉴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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