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발달장애 앓는 민우 씨 어렸을 때부터 그림 소질 보여
강선녀 작가 만나 재능 '날개'…작품 속 '웃는 동물' 담담한 위로

몇 해 전 진주 남강 변 한 카페에서 작가 김민우 씨의 작품을 처음 봤다. 좀 유아적이지 않나 싶었지만, 그의 그림에는 미소를 머금게 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그러고는 지난해 겨울, 진주 진양호 입구에 있는 '꽃바람공방'(강선녀 작가의 목공 작업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어떤 장애인지는 잘 몰랐었다. 그때 민우 씨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무척이나 의식하면서도 내 시선을 피해 열심히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다만, 그의 표정이 참 천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년 작가 김민우(23). 그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영화 <말아톤>(감독 정윤철)에서 조승우의 연기와 말투를 기억하는가. 민우 씨가 딱 그렇다.

생활인으로서 그는 어머니 김인숙(53) 씨와 스승 강선녀(41) 작가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창작 그 자체에서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코끼리, 사자, 호랑이, 표범, 하마, 기린 같은 동물을 그린다. 주로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보고 그린다고는 한다. 그렇다고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작품에는 그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민우 작가.

특히 동물들의 표정을 보면 누가 봐도 아, 이건 김민우 작가 작품이구나 하고 느낄 정도다. 그가 얼마 전 뭉클 갤러리에서 4번째 전시 '순수동물'을 시작했다. 전시 첫날 민우 씨 어머니도 함께 온다고 하니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였다. 민우 씨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 왜 동물 그림을 많이 그려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동물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 근데 동물이 다 웃고 있어요. 사자도 웃고 있고, 코끼리도 웃고 있고, 표범도 웃고 있고, 호랑이도 웃고 있어요!

"웃는 얼굴을 그렸어요!"

- 웃는 얼굴 좋아요?

"네!"

- 동물들이 다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 이 그림은 어떻게 그린 거예요?

"사진 보고 그린 거예요!"

- 어떤 동물이 제일 좋아요?

"모든 동물이요!"

- 이 그림은 색깔을 아주 잘 칠했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예쁘게 칠했어요!"

김민우 작가 작품.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재밌다.

작품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추상적인 질문에 민우 씨는 답을 잘 못했다. 어머니 김인숙 씨가 곁에서 웃으며 귀띔했다. "민우는 그냥 그린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그렸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민우 씨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외가 쪽 재능을 물려받은 듯하다.

"친정아버님이 아주 그림을 잘 그리셨어요. 영화 포스터 도안하시던 분이셨는데, 영화관 밖에 내거는 그런 큰 간판 그림이 아니고 신문 광고로도 쓰는 진짜 원본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분이요."

그림에 소질을 보이자,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보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민우 씨 재능에 날개를 달게 된 일이 생겼다. 조각가이자 목공 작업실을 운영하던 강선녀 작가를 만난 것이다.

"톱이며 망치며 위험한 물건이 많아서 처음에 안 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민우가 목공 일을 재밌어하니 계속 보냈죠. 벌써 5,6년째네요."

강 작가는 민우 씨의 독특한 면을 잘 이해했다. 그에게 유화를 권유하고 선생님을 소개해준 것도 강 작가다. 강 작가와 함께하면서 민우 씨도 작가로 거듭났다.

"그의 내면엔 시간과 물리적 공간, 이미지 혹은 유무형의 사건들이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다. 흔히들 그의 장애를 자폐로 분류하지만 그것으로 그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언어와 관습 대신 그림을 그리고 입체를 만드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칼을 부드럽게 다독거릴 수 있었다. 모든 창작자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렁거리는 불꽃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김민우 또한 정직하게 그 길을 따라가는 작가다. 김민우가 건네는 언어는 난해하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위로가 된다."

민우 씨 전시에 붙인 강 작가의 소갯글이다.

민우 씨가 그린 동물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다. "자기가 행복하니까 동물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보이고, 또 그렇게 그리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거 같아요." 어머니 김인숙 씨의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검고 큰 눈망울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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