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의령군 가례면 수성마을 박종술 이장

의령의 진산, 자굴산. 그 너머로 동이 틀 무렵 가례면 수성마을 박종술(58) 이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먼저 2900㎡(약 900평)에 달하는 축사에 들러 200여 마리나 되는 소들의 먹이를 주고부터는 마을 어르신들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마실을 나선다.

그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을 두고 어제의 안녕과 오늘의 고단을 위로하는 이장의 당연한 직무라 여긴다.

"우리 의령군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지만, 10년 가까이 고독사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저와 같은 이장을 비롯해 의령의 마을 공동체 전체가 서로의 안전을 챙기는 인심 좋은 미덕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매일 논밭에 일하러 나가시는 어르신들 보며 인사를 나누고,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가가호호 방문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박종술 이장. /조현열 기자

그의 말처럼 거의 매일 부채꼴로 펼쳐진 마을 집들의 풍경이 보이는 마을회관 마당에서 여름 땡볕이 내리쬐기 전에 논밭에 일하러 나가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고, 아직 얼굴 내밀지 않은 어르신들이 있으면 행여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가가호호 방문도 빠뜨리지 않는다.

"가례라는 지명은 퇴계 이황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수성(修城)이라는 이름은 높은 산의 고개를 닦아낼 시간만큼 오래오래 산다는 축복의 의미가 담긴 곳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곳 가례라는 지명은 퇴계 이황이 젊은 시절 수학을 위해 찾았던 외가댁의 고요한 경치와 그곳 사람들이 예와 덕을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다.

아직도 면 소재지인 가례마을에는 암각에 '가례동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웅장하게 서 있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줄기인 자굴산과 고요히 흐르는 가례천이 그 이름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마을 이야기를 나지막이 읊조린 그는, 자신의 오래된 이야기도 살며시 꺼내 놓는다.

"저는 한 번도 의령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시간에서도 저는 끝까지 고향을 지키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떠나지 않은, 아니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젠가 일을 마치고 지금처럼 높은 곳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 내 친구가 고향을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큰 가방을 들고 마을 초입으로 나가는 친구 모습과, 그 뒤를 쓸쓸히 바라보는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어머니 생각이 들었고, 제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그 쓸쓸함이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고향 가례에 남은 그는 진짜 농군이다. 소를 키우고, 논밭을 일구고,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는 조직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농회, 청년회, 체육회 등 시골 마을 공동체에서 중심이 되는 거의 모든 조직 전반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그 저변을 넓히고 힘을 길러갔다.

그 덕분인지 의령군에서 가례면의 자생적인 사회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지역이 됐다.

지금 그는 의령군에서 2015년부터 3년간 일정규모 이상의 농가를 선발하여 추진하는 새 부자 500호 농가육성 프로젝트 사업에 선발돼 교육을 받고 있다.

생소한 것들도 많고 어려운 것들도 많지만, 먼저 공부하고 배워서 마을 주민들에게 전파해 다 함께 부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가례면 수성마을 온 누리가 열기로 가득할 시간, 가례천을 내려와 마을 초입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그는 마지막 인사를 이 말로 대신했다.

"마을 입구에 우리 수성마을 표지석을 만들 겁니다. 자연석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마을이름을 새겨,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남길 겁니다. 사람이 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임을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걷기만 해도 땀이 흘러내리는 날씨였지만, 환하게 웃으며 말을 전하는 그에게서 그 열기만큼이나 고향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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